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와 대선 후보로 경쟁했을 당시 1,100만명의 불법 체류자가 시민권까지 받을 수 있는 사면 법안을 당선 시 100일 이내에 상원에 제출할 것이라는 일명 불법체류자 구제법안을 공약한 바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정책을 대부분 뒤집을 법안이어서 미국 내에서도 찬반의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바이든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이후 그는 공약을 지키기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주 또 하나의 법안이 상정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원뿐만 아니라 하원까지, 초당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서류 미비자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공화당 소속 마리아 엘비라 살라자르(플로리다) 연방하원의원과 민주당 소속 베로니카 에스코바르(텍사스) 연방하원의원은 미국에 살고 있는 불법체류자에게 합법 신분을 부여하고 시민권 신청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존엄성 법‘(Dignity Act)을 공식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이미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범죄 기록이 없는 불체자를 대상으로 체류 신분을 제공하는 ‘존엄 프로그램’(Dignity Program) 신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존엄 프로그램 수혜자는 7년간 매년 700달러씩 총 5,000달러 수수료를 내면 근로와 여행 등이 허용된다. 또 존엄 프로그램 수혜자들은 1.5%의 급여세를 내고, 자신의 건강보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법안에 따르면 존엄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 1,100만 명에게 합법 체류 기회가 제공될 것으로 추산된다. 7년간 존엄 신분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이를 갱신하거나 5년간 총 5,000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시민권 취득을 신청할 수 있다. 그래서 총 12년간 1만 달러를 내면 시민권 취득까지 가능한 것이다. 이 법안은 존엄 프로그램 수혜 이민자들이 내는 수수료를 통해 모아진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국경 보안을 위한 비용으로 쓰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 법안에는 가족 방문을 위해 일시적으로 미국에 오려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비자를 만들고, 학생비자 소지자의 경우 비자 상태를 유지하면서 영주권 신청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연방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지도부는 이 법안 처리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 법안은 공화당 우선순위인 국경 보안 강화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이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 민주당의 우선순위인 불체자들에게 시민권 취득 기회 부여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즉 공화당은 이민개혁을 위해서는 우선 미국 국경의 안보 강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를 법안 논의 과정에서 반영할 경우 도리어 민주당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의원들은 1990년대부터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는 이민법 개혁을 위한 초당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합법적 이민 기회를 확대하면서 국경 보안을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민개혁법의 변수는 늘 공화당의 반대여서, 통과를 위해서는 상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상원에서의 통과 반대를 위해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를 막기 위해서는 상원 전체 100명 중 60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공화·민주 양당 대결 구도 속에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내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사면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이는 의회의 지지를 얻어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인데,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에도 파격적인 이민개혁안을 발표하고 상정시켰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 이유로는 민주당은 무조건적인 구제를 주장하면서 공화당과의 마찰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화당의 협조를 끌어내는 이민개혁법안이 성사하려면 공화당에서 반대하는 이유인 밀입국을 실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정책과 범죄 전과자 사면대상 제외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상정된 개혁안은 웬만큼 서로의 절충안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주 전체 한인 불체자는 약 19만명 정도이다. 그리고 이번 이민개혁안이 통과되면 미국내 13만명 정도의 한인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0년 센서스 인구통계결과로 보면 콜로라도 한인 인구는 약 2만 4천명이며, 이 외에 약 7천여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민개혁법안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다. 하지만 만약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행정명령을 통해서라도 서류 미비자들에게 합법체류 법적 지위는 아니지만 추방유예라는 방법으로 자유롭게 미국 내에서 체류하고, 해외여행도 할 수 있는 법 규정만이라도 성사되길 바란다. 
물론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시선은 곱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인해 국경을 넘었거나, 비자 체류 기간을 넘겼다 하더라도, 10년 이상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고, 법을 수호하면서 착실히 살아왔다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쯤은 제공해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와 동시에 불법체류자뿐만 아니라, 합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역사회 경제에도 이바지하고 있는 투자비자(E-2) 소지자들에 대해서도 영주권과 시민권 신청이 가능해지는 법안이 하루빨리 모색되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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