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교회 김교철 담임목사

    사계절이 있는 콜로라도의 봄은 자연의 부활을 가져오는 계절입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 앙상하고 샛노랗게 말라버린 나뭇가지나 풀이 봄의 따스한 햇살이 비취면 파아란 싹을 내밀고 순식간에 천지가 푸른생명,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충만한 부활의 장면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상은 인간의 생각 속에는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인간의 사후 영혼 불멸은 믿었지만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통해서 계시하신 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져오는 것일까요?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존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와 그 자손들의 영혼이 즉시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혼이 죽어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으니 절망에 처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병들고 노쇠돼서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으니 인간의 생명은 한정되어 살다가 병들고 노쇠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죽음의 절망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환경적인 절망에 부딪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너희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인간의 상황을 절망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인간은 죄책과 정죄의 절망에 놓여 있는데 그것을 결코 인간이 이겨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에 빠져 있어서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영화롭더라도 그 삶의 의미와 가치는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또 이렇듯 '자니간은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에 빠졌으며 또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죽음과 절망에 빠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정서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보아서도 절망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절망을 어떠한 사람도, 어떠한 문명도, 과학도, 어떠한 사회개혁도 건져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절망을 당신의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모든 사망과 절망의 세력을 다 정복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소망의 부활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죄악을 청산하고 부활하신 것으로 우리의 영혼을 용서로써 살려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셨으니 영혼 부활의 소망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로 부활하심으로 인간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또한 저주를 청산하고 부활하심으로 축복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용서와 의, 삶의 목적과 의를 부활시켜 주셨으며 영생의 부활을 가져다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원래 절망적인 존재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아진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은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가슴속에 영원히 소망을 부활시키셨습니다. 마귀는 아담을 꾀어 타락시킴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미움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하와를 원망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죄를 짓게 했소' 하와는 또 뱀을 원망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부부의 갈등이 생긱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마귀가 심어놓은 갈등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는 비극이 다가왔습니다. 첫아들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밭에서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친족살상의 비극의 시작입니다. 이래서 오늘날까지 인간의 역사는 오로지 전쟁의 역사입니다. 민족과 민족 간, 부족과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 인간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생겨난 이후로 전쟁이 없는 때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인류는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세상을 오염시키고 수많은 인명을 파멸시켰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사상 대결로 말미암아 오대양 육대주가 모두 다 전쟁터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이 피 흘림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고 전쟁을 통해 수많은 젊음이 들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미움이 온 세상에 가득했는데 미움을 청산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미움을 에수님이 오셔서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인, 유대종교지도자들, 일반 군중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로부터도 미움을 받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온 인류의 미움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이 미움을 멸하시고 위대한 사랑의 화신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보고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무와도 대결하지 않고 크신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감사하고 극복하며 사랑으로 부활하신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사랑의 원천이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일 때 하나님과 인간은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원수된 담은 허물어지고 미움은 사라지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햇빛과 같이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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