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한국의 진보 논객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신간‘퇴마 정치’를 출간하면서 '윤석열 악마화’라는 마약에 중독된 민주당을 다시한번 도마 위에 올렸다.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위선을 고발해온 강 교수는 이번 신간에서도 독설을 쏟아냈다. 강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우리 편은 신격화하고 반대편은 악마화”하는 부족주의적 정파성과 원리주의적 탈레반 기질이다. 그는 책에서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윤석열과 그 일당이 얼마나 사악하고 무능한지를 폭로하는 일에 집착했지만, 자신들의 기질이 더 큰 문제라고 여기는 유권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간 ‘퇴마 정치’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문재인 정권이 집권 초기부터 추진한 적폐 청산은 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굳히는 데에 크게 기여했고, 그 과정에서 보수 야당이 초토화되었으며, 민주당의 20년, 50년, 100년 집권 가능성을 현실화시켜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러한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한번에 뒤집어버린 사건이 2019년 ‘8·27 사태’였다. 이날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날이다. 윤석열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절대 쉽지 않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너무나도 단순 무식한 이분법을 택하고 말았다. ‘윤석열 악마화’는 사실상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후안무치를 폭로하는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2022년 대선 결과는 2년 7개월간 지속된 윤석열 악마화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악마화라는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윤석열을 미워하는 수준을 넘어 악마로 간주함으로써 스스로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처럼 강 교수는 신간을 통해 민주당을 맹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강 교수의 논조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이런 책을 발간했다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해 전북대학교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교수라고 하지만, 사실상 그는 1990년부터 2000년대,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언론학계와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진보, 좌파의 최전방에 서 왔던 논객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학문적 기반은 언론사와 언론정보학이지만, 실제 그의 저서를 보면 사회, 정치, 문화 전반에 폭넓게 걸쳐 있다.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에게 리영희가 영향을 주었다면, 민주화와 탈냉전 이후인 90년대에는 강준만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전라도 출신답게 정치 해석이나 논평을 호남 지역주의적 시각 중심이었다는 평가가 매겨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배출한 대통령 중, 김대중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영호남 출신의 정치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독설을 내뿜었던 그였기에 이런 평가가 나왔을 것이다.


    그는 또, 90년대 말 ‘안티 조선 운동’에 크게 기여해, 한국의 주요 언론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사회적 비평 시각으로 인해 필자의 대학시절에도 그는 가장 깨어있는 교수로 평가받았으며, 그의 저서 한국대중매체사,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저널룩 ‘인물과 사상’등은 교과서처럼 읽고 또 읽었을 정도로 그의 펜대는 막강했다.


    이처럼 진보와 좌파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20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을 대놓고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프레임’이라는 표현에 비판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이 책에서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문제를 지적하면 이구동성으로 내놓는 모범답안이 바로 ‘조중동 프레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중동 주장과 무조건 반대로 가는 것이 진보와 개혁의 본질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조중동 숭배증’에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누가 더 조중동을 악마화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진보성을 더 찬란하게 과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서, 실제로 그런 믿음이 통하는 민주당의 풍토는 정치를 ‘강성 팬덤 동원의 기술’로 전락시켰고 지지자들 위주로 단기적인 승리를 누리려는 의원들이 득세하는 정당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최측근이었던 그가 이런 책을 출간하자,‘퇴마 정치'의 내용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주로 인용하는 곳은 민주당에 비판적인 매체나 혹은 친 여당 인사들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민주당 비판을 ‘범좌파’인 강 교수가 대신 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일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새해 칼럼에 써먹고 싶은 욕심에 냉큼 책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늘 생각해 온 주제였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국민이라면 모두 아는 이야기여서 오히려 진부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준만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좌파를 포기하지 않고 진지하고 애정어린 자세로 진영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당을 적대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더욱 발전하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이는 보기 힘든 좌파 지식인의 자세다. 대다수 좌파 지식인들은 각성하지 않는다. 소수의 각성자가 있다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그렇기에 강준만의 이러한 온건한 각성은 한국 좌파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미덕이다. 


    강 교수의 신간 퇴마 정치는 ‘우리편은 신격화하고 반대편은 악마화’하는 민주당의 비이성, 오만과 어리석음에 관해 지적한 책이다. 새해 첫날 접했던 올해의 첫 책이어서 그런지 필자도 내 글쓰기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진단하면서, 각성되고 발전으로 이어진다면 극단적인 비방은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우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에는 지식인들이 쓰는 언어가 온건해지는 과정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 편에도 악마가, 상대편에도 천사가 존재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적(敵)과의 동행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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