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 기자
며칠 전, 한 고등학교 졸업식에 갔다. 여자 사립고등학교 졸업식이었는데, 150여명의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의 표정 하나하나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고등학교 졸업이 미국에서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식은 중학교 졸업식과 마찬가지로 학업의 연장을 위한 또하나의 행정상의 절차일 뿐이다. 대학교, 아니 대학원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되는 판국에 고등학교 졸업장은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허접한 종이 조각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등학교 졸업장조차도 없다면 인생에 아쉬움이 남을것 같다.
누구에게나 패기 넘치고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어하는 시절이 있다. 조신하게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고, 대학에서도 도서관 붙박이가 되어 공부만 하면서 취직이 안될 것 같으면 눈치껏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정석이 되어버린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르다.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호기있게 학업을 중단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리고 그걸 이렇게 열심히 말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린 친구들은 똘똘 뭉친 자신감 하나로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어 버린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 전국적으로 미국의 고졸 학력 검정고시인 GED(General Education Development) 시험의 신청자가 크게 늘고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서 세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비정한 곳인지를 새삼 체험한 이들이 뒤늦게 검정고시를 쳐 고등학교 학력이라도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미시시피 주에서 11학년에서 낙제한 후 미련없이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던 펠리샤 그린들(Felisha Grindle) 이라는 여학생의 예를 들어보자. 공부가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어, 힘든 공부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일 해서 돈이나 벌자는 마음에 고등학교를 자퇴한 그린들은 카지노에서 일하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모든 것을 잃고 콜로라도로 이주해왔다. 이제 31살이 된 그린들은 오로라에서 2자녀를 키우며 월마트에서 캐시어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그린들은 GED 시험을 쳐서 고졸 학력이라도 인정받고 싶지만, 이제 나이가 너무 들었다는 생각에 더 위축되고 엄두가 나지 않아 더욱더 패배감에 젖은채 살아가고 있다.
그린들 같이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고 끈기있게 학교를 다녀 무사히 졸업한 학생들은 최소한 인생에서 하나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하물며 대학 졸업장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겠는가. 물론 금숟가락 물고 태어나지 않은 한 대다수의 미국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 등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 대학을 졸업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장은 희망의 상징이다.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대학을 졸업할 정도의 끈기와 근성이 있다면 항상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마련이다. 힘든 공부를 마치고 학교를 졸업한 모든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하나의 시작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모두에게 외친다.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