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청소년 문화축제를 마쳤다. 청소년 문화축제를 시작한지 벌써 12년이나 되었고, 이번에도 실력있는 학생들이 대거 참가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어쩐 일인지 행사를 잘 마치고도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큰일을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보다도, 상을 받지 못한 참가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무대와 관객들의 응원은 이 곳 콜로라도 한인 커뮤니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여기에다 이미 탄탄한 실력을 검증받은 전 대회 수상자들이 펼친 축하공연은 객석을 감동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을 참가자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그들이 무대에 서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의 깊이를 알기에 더욱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다음날 뜻하지 않게 참가자들로부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어 감사했다는 카톡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꿈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는 주간 포커스에 감사하다는 진심어린 부모님들의 인사를 받고서야 간신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지난 대회까지 다소 노래에 치우쳐 있었던 청소년 문화축제의 무대가 올해는 매우 다채로웠다. 바이올린, 피아노, 노래, 댄스 등 참가 장르가 다양했고 특히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갖춘 클래식 악기 연주자들의 등장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 악기인 가야금까지 더해져 축제의 폭이 확실히 넓어졌다. 그리고 세팀이 케이팝 댄스로 참가했고, 대상까지 수상해 케이팝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모든 참가자들의 수준도 높아 관객들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무대에 푹 빠졌다. 예선 때 보여주지 않았던 실력들이 뿜어져 나오면서 공연장을 달구기에 충분했다. 또, 축하공연을 펼친 7회 대상 수상자인 서유나양의 피아노 연주는 우리끼리만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실력이었고, 7회 은상 수상자의 자격으로 축하공연을 펼친 이수아 양의 가야금 연주는 4년 전의 모습과는 달리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이번 8회 행사는 원래대로라면 2020년에 개최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행사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올해 다시 재개되었다. 하지만 장소를 섭외하는 일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이 행사의 주인공들이 학생들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학교의 오디토리움을 빌리고 싶어서 지금까지 레인지뷰 고등학교의 오디토리움에서 공연을 해왔다. 그래서 예전과 같이 오로라 학군의 시설 임대과에 문의를 했지만 진행상황은 예전과 달랐다. 코로나로 인해 직원과의 대면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학교 직원들이 수시로 바뀌거나, 담당자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많았다. 간신히 연락이 닿았는데, 레인지뷰 고교측으로부터 조명에 문제가 생겼고, 피아노가 준비되지 않아 공연이 어렵겠다며 난감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공연을 불과 3일 앞둔 상황이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행스럽게 학교측은 업무상의 실수를 인정했고, 세시간만에 게이트웨이 고등학교의 공연장을 섭외하는데 성공했다. 공연장 섭외뿐 아니라 트로피, 배너, 순서지 등 소소한 준비절차들이 발목을 잡으면서, 솔직히 괜히 일을 벌였다는 후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책은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심사과정이  힘들었을 정도로 참가자들의 실력은 뛰어났고, 이 무대를 위해 열심히 연습해온 그들의 열정에 감탄하면서, 잠시나마 행사 개최 자체를 후회했던 필자의 마음은 온전한 미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칫 수상하지 못한 참가자들이 불만을 터트릴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면서 겸손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깍듯이 인사하고, 공연을 마치고 난 뒤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는 예절 바른 아이들을 보면서, 이 청소년 축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또 다른 배움을 주고 있음을 확신했다. 


     참가자들의 놀라운 실력과 훌륭한 무대 매너 뒤에는 부모의 역할이 숨어 있다. 이번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의 부모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필자의 두 아들은 피아노를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별 관심이 없다. 이는 우리 아이들의 재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바깥일 하랴, 집안일 하랴, 이리저리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레슨을 자주 빠뜨렸다. 그런데 이날 참가한 학생들의 부모들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생활을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이렇게 빛나는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콜로라도의 한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전달해 주었다. 자기 주머니에서 1백 달러도 나오기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 많은 분들이 ‘청소년 문화축제’라는 말만 듣고 두말 않고 후원을 해주셨다. 형식적으로 이름만 한 줄 쓰여지는 후원자가 아니라, 매년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청소년 문화축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중요한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상을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본선 무대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고, 그렇기 때문에 심사기준도 절대적일 수 없다.  이 행사를 통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자신의 꿈을 찾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자세를 배우길 바란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멋져 보인다. 필자가 지난 12년동안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해온 이유는 이런 음악경연을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무대 위를 장악하는 자신감을, 그리고 한국사람이라는 동질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이번 경연에 참가한 학생들 또한 콜로라도의 숨은 인재들이었다. 본선에 진출했던 22명의 친구들에게 격려와 칭찬의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미래를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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