휄로쉽교회 이두화 담임목사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성격에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나는 성격이 소심해서 적극적으로 바꿔 보고 싶어. 그럼 내 삶은 조금 더 나아질 거야’, ‘나는 원래 말투가 직선적이고 거칠어서 듣는 사람들이 어려워하니 더욱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등등 자기 삶의 성격의 개선을 시도해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쉽지 않지요. 우리는 우리의 성정이 쉽게 바뀌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마치 부실 수 없는 큰 벽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젊어서부터 부단히 노력했지만 잘 안되고 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떤 특정한 것들은 ‘나는 안돼’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성격을 바꿀 수 없다고 믿습니다. 이와 같은 정서를 잘 볼 수 있는 것이 작년에 출판된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많은 사람이 매우 다양한 성격 검사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혈액형을 가지고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대체로 적극적이며, AB는 이상한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외국 사람들은 ‘컬러 코드’라는 것을 좋아했는데 레드는 야망가적 기질이 있고, 흰색은 자기 성찰을 중심으로 해서 레드가 흰색을 만나면 흰색이 고생하니 만나면 안 된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더 많은 성격검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 검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사람의 성격을 이미 결론 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성격은 정해져 있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변화를 원하지만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철학이 왕성하던 시기에는 ‘얼굴은 못 바꿔도 성격은 바꿀 수 있다’라는 변화 가능성 있는 사회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의학 기술이 발달한 요즘 시대에서는 ‘성격은 못 고치지만 얼굴을 고칠 수 있다’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변화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변화될 수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모두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비밀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변화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그 사람들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기질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인데 변화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바울이 된 사울이 있습니다. 사울은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행동하는 거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닐 때,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하여 멀리 쫓아가 잡아, 결박하여 끌고 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좋게 말하면 고학력에 실행력이 대단한 것이고 배운 것을 고집하는 고지식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쁘게 이야기하면 외골수 내지는 대화가 일절 되지 않는, 보는 눈이 좁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성정을 가진 자가 변화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도행전 9:21-22>

 
    바울, 당시 사울이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자였지만 하루아침에 손바닥을 뒤집듯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의 성격을 따라 행동하면 절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왜 그렇게 가능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는 자기 성격을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울과 같이 ‘상상 이상의 행동’을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보통 우리는 ‘상상 이상의 행동’을 한다는 것을 미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상상 이상의 행동은 미친 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은 평소 자신의 성격과는 맞지도 않는 일을 하라고 도전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소심한 나에게 ‘하나님은 너는 가서 복음을 증거해라’라고 도전하시기도 합니다. 또 너는 가서 이 사람에게 너의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구하라, 내지는 너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성격과 기질을 생각한다면 하지 않을 일들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이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됩니까? 성격이나 기질에 상관없이 변화된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변화될 수 있고 또 변화된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나중에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너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사는 것보다 말씀하시는 이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3-4>

    우리는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된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그리스도의 물결로 뒤덮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처럼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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