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담임목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라고 인정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만 그중에서 한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엔게디 동굴 속에서 벌어진 사건일 것입니다.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울 왕은 삼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찾으러 그곳으로 갑니다. 그곳에 도착한 사울 왕은 용변을 보기 위해 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전에 사용했던 한글 개역 성경에는 이 장면을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라고 완곡하게 표현했는데, 지금 사용하는 개역개정 한글 성경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사무엘상 24:3)라고 번역했습니다. 한마디로 ‘똥 싸러’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굴속에는 이미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많은 동굴 중에 사울 왕이 용변을 보러 찾아 들어간 동굴이 하필이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의 은신처였던 것입니다. 사울 왕에게 찾아온 최대의 위기의 현장입니다. 왜 위기입니까? 먼저 다윗 코앞에 무방비 상태로 자신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긴장감 없이 가장 편하게 앉아 있게 되는 장소가 화장실 아닙니까? 그래서 불교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 부릅니다. ‘근심과 고뇌를 풀어주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사울 왕에게 있어서 이곳은 육신적으로 심적으로 스스로 무장해제 시킨 곳입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보고 있는데 사울 왕은 다윗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 큰 위기가 어디 있습니까? 다윗은 굴 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 자기 앞에 들어온 사울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그 곳에 다윗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하체를 내리고 무방비 상태로 용변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살기등등하게 다윗을 죽이고자 했던 사울 왕인데 이 순간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정말 아이러니칼한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순간을 목격한 다윗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윗에게 사울 왕을 죽이라고 강요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This is the day)라고 한 이 말은 다윗에게 어떤 의미의 말일까요? 기회의 말일까요? 아니면 위기의 말일까요? 다윗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은 사울 왕의 위기만큼이나 큰 위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먼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러한 강력한 요구는 자의적인 해석이며 편의적인 적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도 다윗에게 사울을 원수로 여겨 언제라도 죽여도 된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원수의 나라 블레셋을 다윗의 손에 넘기시겠다고 한신 적은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확대해석해서 이 상황에 적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의적이고 편의적입니다. 자신의 상황적인 유 불리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코걸이 식으로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또한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사무엘상 24:4)는 말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신 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윗의 생각과 감정에 근거하여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아닙니까? 어디에서 나온 말이지요? 사사기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21:25). 다윗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요구를 듣고 자신의 생각에 좋은 대로 행하는 순간 다윗에게 하나님은 왕이 아닙니다. 이 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길 것인가 아니면 내 생각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행동해 버리므로 내 스스로 왕이 될 것인가”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큰 위기의 순간입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다윗이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사울 왕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죽여야 할 사람을 살려주었으니 오히려 마음이 찔리는 것이 아니라 당당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다윗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도 순전한 신앙 양심을 가신 사람이 있을까요? 모름지기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참신앙의 지표가 됩니다. 그래서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울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이고,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명분이 충분하고, 사울이 죽으면 다윗 개인적으로 모든 역경과 고난을 깨끗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라 할지라도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도, 내게 유익이 되어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면 안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싫고 내게 유익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는 것이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며 그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인 되심과 정의로움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그런 모습을 닮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맞는 자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내 생각에 좋은 대로 살아야 행복하고 성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장 망하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다 할지라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지 않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생 전체를 승리로 이끄는 비결임을 굳게 믿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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