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장 1절~4절
우리 교회 카페에 아가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태어난지 몇 개월된 아가들로부터 돌이 지난 아기들, 두 살, 세 살 된 아가들의 사진입니다. 그렇게 귀엽고 이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니다. 이 아기들을 키우느라 엄마 아빠들이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을까요? 기저귀 갈고 목욕 시키고, 울면 안아 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얼마나 고생을 하고 계실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수고하고 쏟아 붓는 사랑을 아기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4살까지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어요. 그런데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을 안받은 게 아니지요. 기억만 나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것이지요. 효도란 그 엄청난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한 것이지요.
그래서 구약 성경은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명기 21장)
구체적으로 효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모님들이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라고 합니다.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오늘 교회 가서 예배 드렸어요. 엄마, 아빠를 위해 기도했어요.”
분명한 신앙이 있어야 이 세상에서 한 가족으로 살고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함께 살테니까요. 말할 것도 없이 효도란 얼굴을 보여 드리는 일이지요. 언젠가 강원도에 사는 할머니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갖다 댔습니다. 아들에게 한 마디 하시라고, 할머니가 외쳤습니다.
“아들아, 살았냐? 죽었냐? 얼굴 좀 보여 줘라.”
예배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얼굴을 보여 드리는 일이지요.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면서 얼굴을 보여 드리면 그게 예배이고 효도지요. 어느 목사님이 아들이 호주에 갔는데 1년이 가도 문자 한 통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힌트를 주었지요. 문자를 이렇게 보내시지요.
“용돈 100만원 보냈다.”
문자만 보내고 돈은 보내지 말라고, 그랬더니 당장 전화가 왔더랍니다. 돈이 오지 않았다고, 자녀들이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 드리는 것도 중요한 효도의 지혜가 될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속도가 느려지지요. 핸드폰, 컴퓨터 더딜 수 밖에 없지요. 이걸 이해해 드리고 좀 참아줄 수 있다면 그것도 구체적인 효도가 되겠지요. 부모님이 나에게 아직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 드리는 일도 중요하지요.
“엄마가, 아빠가 거기 계시니까 든든해요. 엄마, 아빠의 기도가 힘이 돼요.”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그립다는 것을, 아빠도 부모님이 그립다는 것을 이해해 줄 수 있다면, 이런 걸 여쭈어 보면 어떨까요?
“엄마는 꿈이 뭐였어? 아빠는 별명이 뭐였어?”
저는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오래 계셔서 여러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팔을 주물러 드리면 ‘아이구 시원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특히 등을 쓰다듬어 드리면 ‘아이구, 시원해라.’는 음성은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효도란 자신의 미래를 사랑하는 일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은 곧 자녀들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자녀들을 지혜롭게 양육할 줄 아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게 하소서.”
◈ 사람사는 이야기
▷알다가도 모를 일? :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저는 여자 셋과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 데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모르겠어요. 오래전 딸들이 전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입니다. 휴일이 되어서 내려오나 하는데 너무 바빠서, 일이 너무 많아서, 너무 피곤해서 오기가 힘들다는 연락이 왔어요. 좀 서운하지만 그래라, 그랬거든요. 효도는 얼굴 보여 주는 거야 해서 주일이나 휴일이면 꼬박 꼬박 내려 왔는대요. 이번엔 너무 피곤하고 너무 바쁘다니, 그래라 했어요. 그런데 지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생글 생글 웃으면서 내려왔어요. 그렇게 바쁘고 힘들고 피곤해서 못 내려온다더니, 아니? 어떻게 내려 왔냐? 내려온 이유가 저에게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지 엄마가 내려와서 같이 파마하러 가자고, 함께 파마하러 가자고 해서 그 힘든 데도 시간을 쪼개서 내려 왔대요. 제가 그랬지요.
“아니 서울에서 파마하지 그래?”
“아빠, 서울 파마 값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
그리고 셋이서 가수원으로 파마하러 가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남자와 여자가 다르긴 다른데 바빠서 못 내려온다고 하더니 갑자기 파마하자니까 내려온 것은 도저히 모르겠어요.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달라요. 그래서 공부할 필요가 있어요. 서로 서로 다름을 알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첫 걸음이니까요.
▷속상함을 해결하는 비결? : 저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일 겁니다. 예산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골목길을 가는 데, 누가 불러요. 야, 이리 와, 저하고 키도 비슷한 놈이 불러요. 처음 보는 아이였어요. 이리 와, 그래서 왜? 그랬더니, 아니 이 놈이, 짜증을 내요. 아니 오라면 오지, 왜가 뭐야? 하더니 다짜고짜로 제 배를 타탁 치는 데, 숨이 탁 막혀 버렸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놈이 돌아서면서 하는 말입니다.
“까불지 마.”
으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 데, 그때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생각만해도 자존심이 덜렁거려서 얼마 동안은 눈만 뜨면 생각났습니다. 아니 잠을 자려해도 생각나고, 잊혀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얼마 후에 태권도 도장엘 다녔습니다. 그땐 그 도장이 연탄공장을 개조한 건물에 맨 바닥이었습니다. 겨울이면 얼마나 추웠던지, 그걸 다 참고 견딘 이유는, 예산 어느 골목에서의 그 비참함을 다시 겪지 않으려고요. 드디어 태권도 초단을 땄습니다. 그 다음에도 생각나긴 했지만 이젠 속상하지가 않았습니다. 태권도 1단이니까요. 힘이 생겼으니까요. 그래서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하, 그렇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 보다는 또 다른 힘을 기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그럼 됐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