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사람은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갑자기 착하게 살려고 하거나,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하려고 하면 농담처럼 던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변하면 죽는다는 것보다는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 조금 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사후의 삶에 대하여 불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착하게 살아서 혹시 모르는 사후 세계를 대비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변하면 죽는다”는 말을 인터넷에 찾아보니 어떤 분이 그 말을 “사람이 죽는 날까지 변해야 한다"라고 바꾸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집착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깨달음을 통해 하루하루 아름답게 변해가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사람은 변하면 죽는다. 그런데 죽어야 진정으로 산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입니다. 변하게 되면 죽습니다. 내가 죽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어야만 진정으로 살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삶, 영생의 삶을 진정으로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셔야 합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아주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쁘다고 말하고 순수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기가 정말 순수합니까? 이 세상에 아기만큼 이기적인 자가 어디 있을까요? 아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웁니다. 배고프면 울고 불편하면 울고 기저귀에 소대변을 보고 나면 웁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아기만큼 이기적인 자가 어디 있을까요?


    다시 생각을 해보면 모두가 다 이기적입니다. 아기는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감추지 못할 뿐입니다 아기가 순수하다는 이유는 자신의 이기적임을 어른처럼 잘 숨기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기 둘이 있는데 장난감을 하나만 가져다 놓거나 사탕을 하나만 가져다 놓으면 난리가 납니다. 서로 가지려고 싸웁니다. 양보라는 것이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어른들은 양보를 합니다. 


    그런데 그 양보하는 모습이 과연 진정한 양보일까요? 내가 가지고 싶어도, 내가 원해도 그것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것, 더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체면입니다. 자신의 명성, reputation 입니다. 어떻게 보여지느냐를 지키기 위해 원해도 양보합니다. 이 또한 이기적인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잘 감추고 성숙해져 보이는 것이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본능적인, 이기적인 모습이 죽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욕심과 욕망 때문에 찾아 온 비극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 때문에 외면한 가족들, 체면을 지키려다 단절된 자녀들과의 대화, 내 관점만 주장하다가 잃어버린 친구들. 우리는 이러한 삶의 작은 전쟁들을 치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의 많은 전쟁들이 그 나라의 리더들의 욕심과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닙니까?


    이러한 나의 모습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 가르쳐 주신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 예수님의 삶을 설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 2:6-9, 새번역).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하여 섬기는 모습.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내 가족을 위해, 내 이웃을 위해, 내 공동체를 위해,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 섬기며 살 때 비로소 삶의 만족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떻게 희생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이 땅에 오셔서 나를 대신해서 사셨고,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의 섬김이 나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여 줍니다. 그의 은혜가 나를 변화시켜 줍니다. 


    4월 17일은 부활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절은 그 하루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절기입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부활 절기는 50일입니다. 이 50일의 부활절기 동안, 아니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동안 예수님을 통해 변화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변해야 내가 죽습니다. 내 욕심과 욕망과 이기심과 이러한 모든 것들이 죽습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삽니다. 참된 삶, 영생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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