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2022년 이슬람의 라마단 금식이 지난 4월 2일부터 시작되었다.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예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2014년 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던 내전이 '라마단 휴전'을 갖게 된 것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동맹군은 라마단 첫날인 2일 밤 7시부터 두 달간 싸움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잠시 갖는 휴전이지만 예멘 사람들은 포성이 없는 라마단 금식을 지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 


    라마단 금식은 매년 이슬람(Hegira)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에 17억이 넘는 무슬림들이 실천하고 있는 연례 행사다. 라마단 금식은 무함마드가 히라 동굴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명상을 하다가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게 된 것을 기념하고, 예언자의 고행에 동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라마단이 돌아오면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금식에 참여한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음식과 물을 금하고 담배를 피지 않는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모스크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규칙적으로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하던 사람이 음식을 금하니 얼마나 배가 고프고 힘이 들겠는가? 특히 현장에서 뜨거운 태양을 온몸에 받으며 중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주로 삼국인들임)의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그들은 금식기간에 몸이 야위고 건강을 상실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식에 참여하는 그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그들은 알라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알라를 기쁘게 하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기 위해 금식한다. 오직 알라를 생각하여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웃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을 할 때에 박탈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인내한다. 그들은 금식을 통해 자신의 정욕을 훈련하고 육체적인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해 간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 이면에는 이슬람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세계관이 작동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관계없이 우리의 일상 생활과 분리될 수 없는 삶 자체이며 일상적인 경험의 문제다. 특히 이슬람 세계관은 이슬람 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이되며, 사물을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세계관의 차이는 긴장과 갈등을 일으킨다.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종교다. 종교는 인생의 최상위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관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가치관을 지배하고 가치관은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슬림을 알려면 이슬람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바라 볼 때 라마단 금식은 바른 금식이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금식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저녁(해가 지면서 해가 뜨기 전까지)에 두 세 차례의 식사를 한 후 아침 예배를 드리고 낮에 잠을 자는 식으로 생활 패턴이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식 기간에 식품이 더 많이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금식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라마단 금식은 강제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 기간에는 비 무슬림도 무슬림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신고가 되면 구속이 되고 추방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외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라마단 기간에 많은 현지인이 해외여행을 한다. 그들은 주로 유럽과 동남아를 여행하며 인생을 즐긴다. 


    라마단 금식이 끝나면 그들은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 축제를 가진다.  축제는 금식을 무사히 끝낸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향연이다. 3일 동안 계속되는 축제를 위해 집집마다 수양을 잡아 요리(만디)를 해 놓고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은 초청하여 음식을 함께 나누며 우애를 다진다. 때로는 외국인을 자기 집에 초청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에게 있어서 현지인과의 이런 유대 관계는 선교의 교량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21세기의 기독교인의 금식 기도는 어떠한가? 현대 크리스천들은 금식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인본주의 세계관의 영향이라고 본다.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비롯된 이성중심의 사조가 기존의 규칙, 권위, 규율, 통제 등을 해체하고 다원성,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심중에 자리잡고 있던 하나님 인식을 몰아 내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신의 존재에 대하여 감각적 인식을 주장하였고, 헤겔(G.W Hegel 1770-1831)은 절대정신이 역사의 변증법적 과정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현상들로 설명하였으며,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였다. 현대인들이 이런 사조에 대해서 잘 모른다해도 인본주의 세계관이 만들어 내고 있는 현대 문화와 가치가 사람들을 편하고, 급하게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한번 클릭하면 자기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무엇 때문에 금식 기도를 하겠는가? 그들은 물질이 필요하면 하나님보다 먼저 파워 볼 티켓을 생각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영적으로 부패하고 어둡던 시대(중세)에 “금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 금식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 이슬람이 기독교의 최대의 대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21세기에 모든 성도들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다가온 무슬림들의 구원과, 이슬람 지역을 섬기고 있는 선교 단체와 교회들이 실천하고 있는 역 라마단 기도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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