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이것이 샬롬의 길이다! 이사야 26장 1절~7절

아이들 동화 중에 당나귀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합니다. 너무 가난해서 아버지는 당나귀를 시장에 팔기로 했지요. 처음엔 당나귀에 아들을 태우고 아버지는 고삐를 잡고 장에 가는데 사람들이 수근거립니다.
“아니 불효막심한 놈, 아버지를 태워야지.”
그 말에 마음이 상해서 이번엔 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아들이 고삐를 잡고 갑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들이 또 비웃습니다.
“아니, 어린 아들을 태우고 가야지, 아버지가 인정머리도 없네.”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이번엔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당나귀를 탔습니다. 그러니 당나귀가 핵핵 거립니다. 사람들이 혀를 차며 또 비웃습니다.
“저러다가 당나귀 지쳐 죽겠네. 당나귀 죽어.”
그럼 어쩌나, 그래서 이번엔 당나귀 다리를 묶어서 장대에 꿰어 아버지와 아들이 들쳐 메고 갑니다. 개울을 만났습니다. 낑낑거리며 당나귀를 메고 가다가 휘청하고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당나귀는 도망쳐 버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물만 실컷 먹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준이 없는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기준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말에 조종당하지요. 기준이 없으면 마음에 평강을 누릴 수가 없어요. 이 사람이 이 말하면 거기에 조종당하고 저 사람이 저런 말하면 그 말에 조종당하고, 그럼 늘 두렵고 불안할 수 밖에 없지요. 우리 기준을 확실히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기준은 말할 것도 없이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십자가만이 우리의 영원한 기준이지요. 이걸 놓치면 흔들려요. 오늘 말씀처럼 심지가 견고해야 샬롬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오늘 이사야 26장에서는 평강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평강의 비결입니다. 첫째, 마음의 문을 열어라입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유익한 것을 받아 들여야지요. 나를 고치고 새롭게 만들어야지요. 우리가 평생 싸워야할 것이 비교하는 일입니다. 비교하는 일은 평생 우리를 괴롭히는 원죄의 속성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하와를 미혹할 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그걸 하나님이 아시고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비교하게 만들어서 그만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지요. 비교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비교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원죄의 속성이기 때문이지요. 비교하는 마음과 싸울 수 있는 결정적인 비결은 ‘순서의 힘’을 훈련하는 일입니다. 저 사람을 보고 나를 볼 게 아닙니다. 그럼 우월감이 아니면 열등감에 빠질테니까요. 저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봐야지요. 하나님을 보고 나를 봐야지요. 그럼 저 사람이나 나나 구원 받아야할 죄인이니까요. 그럼 평강이지요.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훈련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저 사람을 보고,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둘째, 신의를 지키고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하라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의로 가득 채우는 일, 그 말씀으로 늘 채우는 일이 평강의 길로 가는 비결이지요. 셋째, 심지를 견고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평강하고 평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를 다른 성경에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번역했지요.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 한결같이 예배하며 한결같이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는 자를 하나님은 평강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심을 신뢰하고, 또 우리도 그 한결같으심을 닮아가는 길이 평강의 길이지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길이 있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 것입니다. 의의 나라를 마음에 가득히 받아 들일 것입니다. 믿음의 심지가 견고하게 함으로 여호와 샬롬의 축복을 날마다 누리는 신령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 설탕물, 콩국, 다시다국?

남자와 여자는 얼마나 다를까요?
여자들은 모릅니다. 남자들이 왜 저러는지? 모릅니다.
남자들은 왜 그렇게 크게 트림을 하는지?
사귀기 전에는 그렇게 말을 잘 하더니 결혼 후에는 말을 안 하는지?
남자들은 티브이는 틀면 왜 뉴스 아니며 스포츠지?
아니, 7시 뉴스 보고 같은 내용의 9시 뉴스는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지?
남자들은 왜 그렇게 폭력적인 방송을 좋아하는지?
권투, 격투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왜 남자들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지?
남자들은 왜 길을 묻지 않는지? 여자들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남자들은 모릅니다.
여자들이 왜 그러는지?
얼굴을 꾸미는 일에 왜 저렇게 시간을 쓰는지?
별로 달라지지도 않는데, 별로 진전도 없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지, 왜 저렇게 얼굴을 두드려 대는 지,
왜 여자 아이들은 화장실에 함께 몰려서 가는 걸까?
여자들은 어쩌면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여자들은 티브이를 보면서 마늘을 까면서 아이들 학원 갈 시간이라고 하면서 한꺼번에 서너 가지를 할 수 있지?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다릅니다.
신부가 시원한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서 어머님이 해 주시던 대로 설탕물에 말았습니다. 남쪽 어느 지방의 풍습입니다. 신랑이 먹다가 토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국수를 어떻게 설탕물에 말어? 그럼 어디다 말아야 하는데? 다시다 국물에 말아야지? 그래? 이장님께 여쭈어 보기로 했습니다. 이장님 국수는 어디다 말아야 하나요?
이장님이 대답합니다.
“국수는 콩국이지요.”
하이고고, 설탕물, 다시다 국, 콩국이라고요?
그렇지요. 다르다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이렇게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다른 겁니다.
서로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인정하고 알아 준다면 훨씬 너그러워지지 않을까요?
다름을 알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 줄줄 안다면, 그게 곧 사랑의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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