휄로쉽교회 이두화 담임목사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단순 속담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아는가?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 내용 중에 “백구시(白狗屎:흰 개의 똥)는 정창(賽瘡)과 누창(瘻瘡)을 치료한다. 가슴과 배의 적취(積聚)와 떨어져서 다쳐서 생긴 어혈을 다스리니 소존성(燒存性)으로 하여 술에 타서 먹으면 신효(神效)하다.”라고 했다. ‘정창’은 종기이며‘누창’은 종기로 인해 고름이 흐르는, 오랫동안 낫지 않는 병증을 말하는 것이며 ‘소존성’은 한약을 만들어 내는 방법의 하나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실제로 흔한 개똥으로 한약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내용이니 개똥이 약으로 쓰였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개똥도 약에 쓰려고 하니까 없다”는 표현은 ‘하찮은 물건이라도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는 이와는 다르게 “평소에 흔한 것이라도 필요해 쓰려고 찾아보면 없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리하여 이것이 진짜 의미하는 바는“너무 흔해서 찾을 필요도 없었던  물건이라도 간절함 속에서 필요를 느끼면 찾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은 어느 것이나 필요를 느끼지 않을 때는 찾지 않지만, 필요를 느끼면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찾는 존재이다. 이는 문명이 얼마나 발달했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래전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했다. 사람은 배고프면 허기진 배를 위해 음식을 찾아 사냥을 했다. 그러다 사냥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필요가 있었고 활과 창을 만들어 내었다. 이는 사람들이 필요를 따라 그것을 채우며 살았다는 것의 방증이다. 하지만 비단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삶을 봐도 우리는 모두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살아간다. 건강이 필요한 사람들은 의사, 약, 운동 등등의 것들을 통하여 건강을 찾을 것이고 진로나 사업의 고민이 있는 사람은 미래의 계획을 따져보고 필요한 조건을 취득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우리 나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살아간다.


    그런데 이처럼 필요를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대격변이 찾아왔다. 바로‘Covid-19’ 팬데믹이다. 아무리 사람이 필요를 따라 살아간다고 하지만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필요도 변하고 그 변할 필요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모르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물론 우리가 지금 팬데믹(Pandemic : 세계적인 유행병)에서  엔데믹(Endemic : 지역적 풍토병)으로 가고 있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어찌할 바를 아직도 알지 못하는 상황’임에는 변함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은 우크라이나 땅을 두고 세계에 전운이 돌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뉴스를 보면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영향’은 무엇인지를 논하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어느 누구도 ‘어찌할 바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이처럼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은 비단 우리만 겪었던 것이 아니고 제자들도 동일하게 겪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비밀이 “성령”에 있다고 한다.


    제자들이 겪은 삶의 대격변은 바로 예수님이 더는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대격변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지냈다면 그들은 그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고, 다른 기적과 이사가 일어나고, 많은 이들이게 또 다른 증거가 되어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제자들은 예수님께 항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필요도 구하고 도움도 구하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 더는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대격변을 겪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처방은 한가지였다. 성령을 받으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과 있는 것보다 성령과 함께하는 것이 더욱더 유익하다 하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아셨다. 성령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10) 당시 제자들은 성령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지혜인 줄 아셨고 성령이 제자들과 함께하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알게 하시고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줄을 아셨다. 이러한 성령이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간 가운데 도우시고 함께하신다.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오늘날 사람들은 필요를 채우며 살지만 신앙인들은 필요만을 따라 살지 않는다. 필요 위에 믿음을 더하여 믿음을 따라 산다. 믿음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순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성령을 주셨다. 성령을 따라 살라! 오늘날 성령이 당신의 능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 할 수 있다. 모두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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