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 고린도전서 9장 24절~27절)
요즘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감탄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특히 공중에서 서너 바퀴씩 회전하는 선수들이 있지요. ‘스노 보드’와 ‘피겨 스케이팅’장면을 보면서 그런 깨달음을 갖습니다. “얼마나 반복했을까? 얼마나 돌고 또 돌고, 돌았으면 저렇게 몇 바퀴씩 돌아도 가뿐하게 멈출 수 있을까?” 동계 올림픽 선수들을 보면서 다시 확인합니다. “아침처럼 반복을 즐거워하자.” 반복은 힘이고 반복은 지혜이며 권세이라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반복이지요. 반복을 잘하면 알통이 생기고 힘을 쓸 수 있지요. 찬송? 반복입니다. 기도? 반복입니다. 늘 보던 얼굴 또 보고 사는 것이고 늘 먹던 밥 또 먹으면서 행복해야지요. 올림픽을 보면서 다시 점검할 것입니다. “나는 아침처럼 반복을 즐거워하는가?” 반복할 일을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은 우선 그 목적을 묻는 일입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는 금메달이 될 것이고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목적을 늘 확인해야지요. 또 하나는 생각이 먼저가고 몸이 따라가면 좋지만 어느 때는 그게 안 되기도 하지요. 게으름이 올라올 때는 어찌할까요? 그땐 몸을 먼저 갖다 놓고 생각이 따라오게 하는 일입니다. 목사인 제가 어느 땐 기도하기 싫어질 때가 있지요. 그러면 저는 무조건 제 몸을 기도의 자리에 갖다 놓습니다. 그러면 슬슬 기도의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지요.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깨닫는 두 번 째 지혜는 ‘응원’하는 일입니다. 내가 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비결이 응원이지요.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느끼는 것은 나도 힘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응원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얻으면 나도 함께 기뻐하게 되지요. 응원은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두려워말라 떨지 말라’,‘너는 내 것이라’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할 것이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응원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나 쉬운일이지요. 우리 서로 서로 응원 좀 하고 살 것입니다. 서로 응원하는 가정은 화목하지요. 서로 응원하는 모임은 화기애애하지요.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또 깨닫는 것은 대표의식입니다. 선수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극복하는 힘은 ‘나는 대표선수’이기 때문이지요. 대표 선수 의식이 분명하니까 웬만한 일은 극복할 수 있지요.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나라의 대표 선수이지요. 이 의식이 확실하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달음질하는 선수들은 절제한다고 말씀합니다. 절제란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 일이 있지요. 또 절제란 하기 싫지만 해야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지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절제란 얼마나 중요한 열매일까요? 이런 말씀도 있지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지 아니하며.” 열심히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이었는가를 묻는 것은 하루의 일과가 되어야겠지요. 바울 사도는 자신의 영적인 싸움을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라는 말로 정리합니다. 영적인 경주자들이 새겨야할 고백이지요.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깨달을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아침처럼 반복을 즐거워하자! 서로 서로 응원하자! 나는 대표 선수다! 우리의 영적인 경주가 어제보다 좋은 오늘이 되고 그리고 주님 앞에 갔을 때 가장 좋은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우선 순위, 분명히 합시다!
어떤 여자 분이 보낸 편지를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속으로 쿡하고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웃을 일은 아니었지요. 신혼 6개월인데, 그럼 깨가 쏟아질 때인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요. 지나쳐요. 화가 난 신부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신랑아 듣거라. 신랑은 나하고 결혼 했냐 재롱이와 결혼했냐? 꽃등심을 나는 살찐다고 못먹게 하고 재롱이에게 다 주고, 어쩌다 전화하면, 재롱이 잘 있어? 재롱이 안부부터 물어 보고, 야, 내가 개만도 못하냐? 재롱이란 놈이 이걸 알고 나를 무시하는 거 알아?” 개한테 무시당하는 설움을 당신은 알아? 이거 오래가면 큰일인데요.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사람보다 좋아하면 큰 부작용이 생기지요. 남편이 빨리 고쳐야겠지요. 어느 여자 분이 새 차를 샀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운전하다가 그만 접촉 사고를 냈어요. 그래도 가장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떨리는 음성으로‘자기, 나 사고 났어.’했더니 냅다 남편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오더라는 겁니다. “거 봐,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래 차는 얼마나 찌그러졌어?” 아니? 부인이 얼마나 다쳤는지는 관심도 없고, 차가 찌그러진 것만? 이런 남자를 내가 믿고 살아야 하나? 그럼요. 그냥 사세요. 그러려니 하세요. 언젠가 남편도 깨달을 날이 올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확인할 것은 분명하지요. 우선순위는 강아지가 아니고, 차도 아니고 남편이고 아내고 자녀이고 부모님이고 이웃이고 친구라는 사실입니다. 우선순위, 분명히 합시다!
▷당근? 달걀? 커피?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딸이 아버지에게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요리사인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세 개의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세 개의 솥에 당근과 계란과 커피를 넣었습니다. 20여분 지난 다음에 불을 끄고 당근과 계란은 접시에 담고 커피는 잔에 부었습니다. 뜨거운 물 때문에 당근은 물렁물렁해져 있었고 계란은 속이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커피는 오히려 은은한 향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당근과 계란 커피는 똑같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역경을 만났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처음엔 견고했지만 역경 때문에 물렁거려 버린 당근이냐? 아니며 시련을 만난 다음에 더 단단해진 계란이냐? 아니면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뜨거운 물을 오히려 변화시키고 유쾌한 향기까지 내는 커피가 되고 싶으냐? 그건 네가 선택할 일이다.” 자 오늘도 선택할 것입니다. “나는 하루의 삶 속에서 당근이냐 달걀이냐? 커피냐. 무엇이 될 것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