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이삭의 실력으로! 창세기 26장 12절~25절
제가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기억하는 어느 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정직하고 온유합니다. 운전을 하는데 교통 법규를 제대로 지킵니다. 매사에 아주 정직하게 사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때가 있어요. 차를 운전할 때, 정직하게 운전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뒤에서 빵빵 거리기도 하고 불을 번쩍 번쩍 하고, 그리고 옆으로 지나가면서 창문을 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데도 그 분은 허허 웃고 말아요. 화를 내는 법이 없어요.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허허 웃어요. 친구들이 이걸 보고 한마디 합니다. “네가 바보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을 먹어도 허허 웃고 마냐?” 그분의 대답은 아주 간단 명료 합니다. “내가 쓰레기통이냐? 그 사람들이 욕하는 걸 내 마음 속에 왜 담냐? 그럼 나는 쓰레기통이 되는 거잖아. 쓰레기 같은 말을 담아둘 통이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허허 웃고 마는 거야. 화를 내면 나만 손해야” 이삭은 정말 온유함의 대명사하고 할 수 있지요. 우물은 그들에게는 생명줄이었습니다. 우물을 팠는데 다른 부족들이 뺏앗아 갔어요.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그럼 싸울까요? 아닙니다. 이삭이 이런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러려니’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파면 되니까요. 또 뺏겨요? 또 그러려니 해요. 다시 파요. 결국 이 그러려니 하는 온유함이 이깁니다. 나중에 우물을 뺏아간 이들이 제 발로 걸어와서 화친하자고 했습니다. 사나운 자가 이길 것 같아도, 맹수들이 이길 것 같아도 아닙니다. 온유한 자가 이깁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의 편이시니까요.
그런데 이삭이 이런 억울한 일 앞에서도 그러려니하는 온유함은 그냥 생긴 게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농사를 지었는데 백배나 거두게 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이삭은 그러려니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걸 믿는다면 좀 손해 보는 일을 만나더라도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연결하는 일은 힘써야지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테니까요. 이삭의 온유함의 특징 첫 번 째는 ‘그러려니’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 째 특징은 ‘섭섭해하지 말자’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아니 하나님은 왜 이러실까? 서운한 마음이 들어올 수 있지만, 이삭은 섭섭해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사람에 대해서 섭섭해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분가하자고 제안합니다. 롯에게 네가 먼저 땅을 택하라고 했더니 물도 좋고 땅도 좋은 소돔땅을 홀랑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엔 그런 말씀이 없지만 아브라함이 대단히 섭섭해 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당장 나타나셨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말씀을 묵상해 보면 ‘섭섭해 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였어요. 이삭의 믿음, 온유함의 특징은 사람 때문에 섭섭해하지 말자였어요. 이삭의 세 번 째 온유함의 특징은 매듭을 짓는 일입니다. 처음 우물을 뺏긴 다음엔 싯나, 그 다음은 에섹, 그리고 평안을 얻은 후에는 르호봇이라고 매듭을 지어 버렸어요. 더 이상, 억울했던 것, 상처 입었던 것에 매이지 않았어요. 지나가 버린 과거에 매이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깊이 배우고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할 이삭의 온유함의 특징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온유함의 극치를 깨닫습니다. “그러려니 하자, 사람 때문에 섭섭해하지 말자, 지나간 일은 매듭을 지어 버리자.” 그런데 이삭의 이 온유함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여정 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어느 한 사람도 알아 주지 않았지요. 그래도 그러려니 하셨지요. 심지어 제자들이 다 도망가더라도, 베드로가 모른다고 부인했어도 섭섭해하지 않으셨지요.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하심으로 매듭을 지어 버리셨지요. 그래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거지요. 이삭이 상처를 훈장으로 만드는 이 온유함으로 승리한 것을 주님 십자가 여정에서도 발견합니다. 주님이 그리하셨고 이삭이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온유함이 가득한 삶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표시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 고쳐지지 않는 아빠의 습관
어느 집안 이야기입니다. 따님이 쓴 글입니다. 제목은 고쳐지지 않는 아빠의 습관입니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엄마는 김치 냉장고를 사자고 하시니까 아빠는 펄쩍 뛰셨어요. 김치 냉장고가 웬말이냐? 아빠는 막무가내였답니다. 그럼 김장독은 어떻게 하느냐고? 엄마가 따졌습니다.
“아파트 옥상에 올려놓고 사용하면 되지, 저렇게 넓은 공간이 놀고 있는데,”“아니 그걸 누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갖다 먹느냐고?”
아빠는 늘 너무 쉽습니다.
“내가 하지 뭐. 내가 할게.”
그러나 말만하고 아빠는 땡이었습니다. 손도 까딱하지 않으셨다. 결국 아침 저녁, 옥상을 오르내리던 엄마는 지쳤고 김치 냉장고를 사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김치 냉장고에 얼씬도 말라고!”
그러나 아빠는 수시로 김치 냉장고에서 과일과 김치를 꺼내 드셨습니다. 눈도 꿈쩍하지 않고,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엄마도 몇 번 눈만 흘리고 그러려니 하셨습니다. 몇 년 뒤, 엄마는 소파를 사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빠는 또 펄쩍 뛰셨고, 엄마는 조근 조근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에 소파 없는 집이 어디 있느냐고, 찾아 봐요. 찾아 봐.”
아빠가 계속 반대하셨지만 결국, 엄마의 생각대로 소파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또 아빠에게 말씀하셨다. 소파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그러나 아빠는 슬쩍 엉덩이를 소파에 걸치더니, 생각보다 편하다고 아예 그 위에 누워 버리셨습니다. 엄마가 소파에 누워 계시는 아빠를 끌어 내리셨지만 휴일만 되면 소파는 아빠 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이 지지직거리더니 화면이 나가 버렸습니다. 수명이 다 된 모양이지요. 엄마는 중얼거리셨지요.
“20년이나 됐으니 바꿀 때가 된 모양이다.”
아빠는 고쳐 쓰면 된다고 하시며 이리 저리 두들기셨지만 그러나 언제나 그러했듯이 엄마는 텔레비전을 사셨습니다. 역시 텔레비전을 제일 좋아하는 분은 아빠였습니다. 한 동안 엄마의 잔소리가 있으셨지만, 아빠는 역시 눈도 꿈쩍하지 않으셨지요. 역시 엄마가 졌습니다. 정말 못 말리는 우리 아빠의 습관이라고 글을 맺었습니다. 세상 모든 가정이 이런 어머니들의 힘으로 버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지요. 물론 그 분의 아빠도 그리 밉지 않습니다. 슬쩍, 내 고집 문질러 버리고 김치 냉장고 열어 보고, 슬쩍 소파에 눕다가 코를 골기도 하고, 그만 해도 괜찮은 아빠일까요?
그 따님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빠의 습관 고치기가 참 어렵다고.
라인 홀더 니버의 기도문입니다.
“고칠 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고칠 수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소서. 그러나 고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고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