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 로마서 12장9절~13절

김요셉 목사님은 수원에서 목회하시는 분인데 얼굴은 미국 사람입니다. 그러나 입을 열면 한국 사람입니다. 아니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랐습니다. 김 목사님이 낸 책이 있습니다.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 김 목사님 얼굴이 미국 사람인 것은 그 어머님이 미국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말을 하면 우리나라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이구요. 그러니 어린 시절, 혼열아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밥에, 김치, 콩 자반 이런 반찬인데, 결국 요셉 도시락으로 눈이 다 쏠린 겁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샌드위치, 다른 아이들은 처음 보는 도시락이었습니다. 엄마가 미국 사람이니까요. 이상한 거라고 아이들이 놀리는 데 그게 그렇게 창피해서 뒷동산으로 도망쳐 버렸대요. 그리고 집에 와서 엄마를 붙잡고 울었어요. 엄마는 내 허락도 없이 왜 한국 사람한테 시집 왔느냐고, 울며불며 탄식을 했는데, 그때 어머니 투르디 사모님의 대답은 간단했어요. 감동적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러니까 요셉아, 예수님 때문에 참고 견뎌라. 한 번은 어머님과 함께 미국에 여행을 가서 미국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됐는데, 첫 시간부터 야단 났어요. 미국 선생님이 요셉, 앞으로 나와 봐요? 칠판에 부르는 데로 써 보세요? 하는데, 아니 영어로는 못 쓰는데, 김 목사님의 표현대로는 바지에 오줌을 쌀 것 같았데요. 다른 미국 아이들 눈이 다 쏠리고 있는데, 이제 죽었구나,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반전이 일어나요.

선생님이,“요셉이는 부모님이 선교사님인데, 한국말을 잘해요. 어디 선생님 이름을 한국말로 써 볼래?” 으와, 그때의 그 희열감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한국말로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요. 칠판에 한국말로 썼어요. 미국 아이들이“내 이름도 써 줄래, 나도 나도.” 그래서 스타가 됐어요. 그 선생님이 정말 지혜로운 선생님이었어요. 요셉이가 못하는 것을 시킨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을 해 보라고 했으니까요. 만약 잘못하는 영어로 써 보라고 했으면 한 아이를 죽이는 거지요. 새해, 1월 달 우리교회 숙제는 잠에서 깨자마자 시편 23편을 암송하고 ‘오늘도 이 말씀이 설명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기도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두 번 째 숙제가 오늘 말씀입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 이 말씀을 이렇게 풀어 봅니다.


“누굴 만나든지, 그 사람의 좋은 점, 장점, 잘하는 것부터 보고 그걸 칭찬하며 내가 배우는 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소원이시지요. 탕자가 유산을 다 허랑방탕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환영합니다. 잔치하고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왜 일까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탕자가 다 잘못했지만 한 가지 잘한 일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일,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거 하나 보시고 탕자의 모든 잘못을 덮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였습니다. 결국 삼촌에게 자신이 속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기적이고 야비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을 인도하셨습니다. 야곱을 좋아하셨습니다.  왜요? 야곱은‘나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안된다.’는 믿음 하나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겁니다. 


    주님은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고기 잡으러 가버린 베드로를 쫓아 가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죄책감 때문에 도망친 베드로를 쫓아가신 이유는 베드로에게 한 가지 좋은 점을 발견하셨기 때문이지요. “베드로는 이거다 싶으면 열심을 다한다.”그 순수한 열정, 그 순수한 믿음 하나를 보시고 모른다고 부인했던 모든 허물을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예배에만 집중합니다. 예배에 은혜 받는 일이 우리교회의 최고의 일이지요. 제자 훈련도 무슨 성경 공부도 없습니다. 오직 예배입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을 돕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성실을 다합니다. 땅 안삽니다. 건축안합니다. 그래도 아프키라 케냐 오지에 예배당 두 개 지었고, 거기에 로코리 고등학교 세웠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이거 하나 때문이라고. 우리 매일 매일 이 숙제를 합시다. “누굴 만나든지, 좋은 것, 장점을 찾고 칭찬하며 그것을 배우는 일”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

 

◆사람사는 이야기 : 달콤함에 속으면?

제가 아마도 서너 살 때 일입니다. 그러니까 1957년이나 1958년? 하하하,
그럼 제 나이가 드러나네요. 나라 전체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세발자전거가 꼬마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아버님이 크게 쏘셨습니다. 저에게 세발자전거를 사 주셨던 것입니다. 신이 났지요. 이리 저리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습니다. 아버님도 흐뭇하셨겠지요. 아들 하나 있는 데 세발자전거를 사 주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 하셨겠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마다 문 앞에 엿장수 아저씨가 와서 가위질을 해 댔습니다. 고무신 떨어진 거, 양재기 깨진 거, 아무 거나 가져 오세요.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어느 날 말입니다. 제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걸 보더니 살그머니 제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살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얘야, 엿 먹고 싶지 않니?”
“먹고 싶어요.”
“이거 봐, 엿가락을 이렇게 늘려서 먹는 거야.”
“저는 병도 없고 고무신도 없고 양재기도 없는데요?”
“아니 너, 세발자전거 있잖아. 이만큼 줄께”
하면서 엿가락을 한 움큼 들어 보이는 데 침이 꼴딱 넘어갔습니다.
“안돼요. 싫어요.”
첫 날은 그래도 꾹 참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이 아저씨가 또 다가오더니
“엿 먹고 싶지? 이거 봐, 엿은 이렇게 먹는 거야.”
하면서 애간장을 녹이는 데, 그만, 그만 제가 세발자전거하고 엿 몇 가닥하고 바꾸어 먹고 말았습니다. 하이고고!
그 후로 건듯하면 아버님은 저를 놀리셨습니다.
“세발자전거하고 엿 바꿔 먹은 놈.”
나중에 저희 집 아이들에게도 네 아빠는 세발자전거하고 엿 바꿔 먹었다고 하시면서 웃으셨지요.
걸핏하면 요즘도 아이들이 그럽니다.
자신들이 불리하면 그럽니다.
“아빠는 세발자전거하고 엿 바꿔 먹었다매.”
저는 다짐합니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일입니다만, 달콤함에 미혹되면 이런 비슷한 짓을 범할 위험이 많지요.
그런 비슷한 일들이 뉴우스에도 종종 나오곤 하지요. 그리고 가슴을 치겠지요. 우리 미리 알고 갈 것입니다.
‘달콤함 것에 눈 뺏기면 인생 망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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