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부족함을 채우면 감동이 온다!  고린도전서 16장15절~18절

    언젠가 부산에서 목회하시는 친구 목사님이 묘한 문자를 주셨어요.
“목사님, 사람이 밥만 먹으면 사는 겁니까? 배만 부르면 되는 겁니까? 내가 요즘 밥은 먹어요. 배도 불러요. 그런데 사람배가 고파요.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실컷 떠들고 말 좀 먹고 싶어요. 빨리 부산 좀 와 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그 문자를 읽으면서 이 분, 외롭구나, 우울하구나, 뭔가 부족함이 있구나. 그걸 채워달라는 거구나. 위기구나. 그래서 바쁜 일들 제쳐 놓고 부산으로 내려간 적이 있어요. 그 목사님 만나서 하루 종일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면서 웃다가 울컥하다가 돌아온 적이 있어요. 헤어진 다음에 문자가 다시 왔어요.
“오늘 말을 먹으니까 마음이 시원해졌대요. 감동했어요.”
성도 여러분, 사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다른 건 부족함이 없어요. 살만해요. 그런데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어야 채워지는 부분이 있어요. 이 부족함이 채워져야 마음이 시원해져요. 말도 먹고, 마음도 주고 받아야지요.


    어느 청년이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어요. 그런데 우울해요. 취업에 성공했지만 부모님이 안계세요. 고아로 자랐어요. 취직 시험에 합격했어도 축하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 슬퍼요. 그래서 자기감정을 인터넷에 솔직하게 올렸어요.
“저는 고아라 엄마가 없습니다. 취직을 했어도 축하해줄 엄마가 없어서 우울합니다.”
그런데 이런 답장이 올라왔어요.
“괜찮다면, 내가 대신 엄마 돼 줄까요.”‘예’라고 했지요. 그리고 문자가 왔어요.“수고했어, 장하다 우리 아들, 정말 잘했어. 파이팅. 우리 아들, 엄마가 축하해!”
처음 이런 말을 들었어요. 정말 이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펑펑 울었대요. ‘우리 아들 엄마가 축하해’, 엄청난 위로가 된 거지요. 성도 여러분, 누군가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을 채워 주면 감동이 와요. 우리 자녀들에게도, 가족끼리도 서로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는걸까요? 부족함을 채워주는 이런 말을 먼저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잘했어, 수고했어, 괜찮아. 힘내, 기도할께.”
그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맞장구 쳐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울 사도에게도 부족함이 있었을까요? 가는 곳마다 교회를 개척하고 쓰는 편지마다 성경이 되었던 바울 사도에게도 부족함이 있었을까요? 물론이지요. 우선 육신의 부족함이 있었어요. 육체의 가시지요. 이 가시를 바울이 순교하는 순간까지 곁에서 치료해 주었던 인물이 있지요. 의원 누가, 참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누가는 바울 사도의 부족한 건강을 채워주는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알고 감당했지요.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구요. 흠모할만한 이름이지요. 그리고 바울 사도가 하는 일에 동역하면서 목이라도 내 놓을 만큼 함께했던 부부가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역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이름이지요. 바울 사도의 부족함을 채워 줌으로 바울 사도는 허락하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었던 거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또 한 사람은 디모데, 바울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바울 사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맞장구 쳐 줄줄 알았던 인물이 디모데지요.
“디모데야, 어서 와라. 거울이 오기 전에 와라.”


   스데바나의 집은 아예 처음부터 섬기는 것을 가훈으로 삼았던 집이었습니다. 섬기는 일이란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일이지요.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는 직접 바울 사도를 찾아 옴으로 바울 사도의 부족함을 채워 주어서 바울 사도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지요. 얼마나 흐뭇했으면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고 했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확인할 것은 먼저 주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셨고 우리의 쓸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빌4:19) 주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신 것처럼 올 한해 우리가 만나는 이들의 마음을 읽어서 그 부족함을 채워 줄줄 아는 시원한 일들이 많아지시기를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사람사는 이야기

▶부끄러움을 알면 아름다워진다!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가 아빠를 졸라서 영화관에 갔습니다. 만화 영화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아빠에게 흥미가 있을 리 없지요. 그저 엄마가 일 때문에 토요일에도 집을 비워서 딸 비위를 맞춰 주려고 아빠가 따라 나선 겁니다. 결국 아빠는 만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골아 떨어져 버렸습니다.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골기 시작합니다. 만화 영화에 폭 빠져 있던 아이가 눈치를 챘습니다. 영화관에서 그냥 조는 것은 괜찮지만 코를 곤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은 잘 아는 일입니다. 당장 팔꿈치로 툭 치며 “아빠.”하고 조그만 소리로 눈치를 주려 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어? 아! 미안.’하고 깰 아빠인데 그날은 무척 고단했던 모양입니다.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몇 차례 더 흔들었지만 오히려 코고는 소리가 더 커진 것 같았습니다. 당황해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화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코고는 것이 자기 아빠라는 사실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여섯 살짜리 꼬마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최선이라고 생각한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앞과 뒤쪽에 앉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향해 작은 입을 열어서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마치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인 것처럼.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습니다.
히야~ 부끄러움을 아는 아이!’

▶점수 따는 비결이 있다!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결재 서류를 살피던 과장님이 그 서류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하 직원을 심하게 꾸중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서류라고 만들어 왔나?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부하 직원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서로 힘든 시간이지요. 보통 이럴 때는‘죄송합니다 다시 잘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건데, 그런데 책망을 듣던 부하 직원의 입에서는 정말 지혜로운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뀌고 말았어요. 꾸중 듣던 부하 직원이 이랬습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과장님이 화 내시는 걸보니 제가 정말 잘못했다는 걸 알겠습니다. 사실 과장님이 저를 야단치신다는 것은 저를 그만큼 아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장님 정말 존경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순간, 과장님은 속으로 감탄했답니다.
‘으와,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사람 싹수가 있구만, 자신을 책망하는 데, 나를 존경한다고? 정말 괜찮은 친구네. 좋았어. 일평생 너를 이끌어 주리라.’
부하 직원을 책망하다가 감동을 받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부하 직원이 하는 일이 다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니 돕고 응원하는 친밀한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틀림없이 점수 따는 비결이 있습니다. 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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