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지난 월요일은 Martin Luther King Jr’s Day였습니다. 그의 “I Have a Dream” 연설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으로 남아있으나 그가 꿈꾸던 세상은 아직 먼 것만 같습니다. 사람이 피부색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품으로 판단되는 세상을 꿈꾸었지만 아직도 인종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퇴치되지 않았습니다. 백인-흑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늘어난 아시안 증오 범죄 증가로 인해 인종차별 문제는 우리에게도 큰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인권운동이 미국 땅에서 일어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코로나 상황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오미크론으로 인하여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만 미국에는 신규 확진자가 80만명이 넘었습니다. 이미 수백만명이 걸린 상황에서 80만명의 새 확진자가 나왔다면 과연 우리 주변에 안 걸린 사람이 누구일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 3년차가 되는 이 시점에 왜 아직도 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로운 정책에 대한 공약으로 치르는 선거가 아니라 서로의 비리에 대한 폭로전 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미국도 금년에 총선을 치루는데 벌써부터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 싸움이 끊이지 않고 보수와 진보의 분열은 더 심해져만 갑니다. 왜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로 , 협조로, 타협으로 일을 풀어나가지 못할까요?


    이 모든 상황들의 중심적 이유는 공통적인 한 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의 근본적 이유는 바로 이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욕심, 이기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선 이 세상의 악을 “죄”라고 정의하는데 그 “죄"의 근본은 자기만 생각하는 인간의 욕심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니 인종차별이 일어납니다. 나의 편리와 권리가 다른 사람들의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니 코로나가 잠잠해질 틈이 없습니다.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와 또 자기 자신의 부와 명예만을 생각하니 서로 대화가 없고 분열은 깊어만 갑니다. 


    이러한 마인드는 신앙 생활을 하는 그 어떠한 종교인들도 가지고 있는 마인드입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섬기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헌신을 하고 봉사를 할까요? 그 신을 섬기면서 결국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공과 부, 가족의 안위 등을 위해 빌고 기도하고 구하는 사람은 있어도 가난이나 질병이나 희생을 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물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희생, 봉사, 섬김보다는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마음 깊이 자리 잡은 바램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나의 봉사나 희생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인정해 주기를, 칭찬해 주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이건 밖이건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있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그래서 소금과 빛이 아니라 빛과 소금이라 우리는 이야기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칭하십니다(마태복음 5:13-20). 먼저 소금이라고 하시고 그 다음에 빛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빛과 소금”이라고 하지 “소금과 빛”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어떻게 보면 빛처럼 드러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요? 소금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소금이 역할을 하려면 스스로가 사라져야 합니다. 맛을 내건, 상하지 않게 보존을 하건, 치유의 목적으로 사용되건 소금은 녹아버려야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녹아 사라지기보다 빛처럼 들어나기를 원하니 “소금과 빛”이 아니라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소금의 역할을 자초하면 어떻게 될까요? 내 욕심,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먼저 생각을 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면 관계가 어떻게 변할까요? 불편하더라도 이웃을 위해 마스크를 한번 더 착용하고 조심한다면 코로나 상황이 어떻게 변할까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보려고 한다면 과연 이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요? 내 주장을 조금이라도 양보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 이런 삶이 소금의 삶이 아닐까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욕심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단,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 희생하셨습니다. 죽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그 분의 사랑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도 희생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2:1-5)


    이러한 마음으로 2022년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소금의 삶을 살면서 2022년 조금 더 좋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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