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담임목사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치다가 ‘제사장들의 성읍 놉’ 땅으로 숨어든 적이 있습니다. 배가 몹시 고픈 다윗이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자,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사무엘상 21:3).  ‘보통 떡’(레헴 홀)은 없지만 ‘거룩한 떡’(레헴 코데쉬)은 있다고 말합니다. 보통 떡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상용하는 떡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떡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떡입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이 떡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무엇입니까? 그 떡을 먹을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성결하다는 조건입니다. 이에 다윗에게서 성결하다는 답변을 들은 제사장 아히멜렉은 그 ‘거룩한 떡’을 줍니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 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사무엘상21:6).   이 ‘거룩한 떡’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진설병’(the consecrated bread)입니다. 진설병이 무엇입니까? 성소안의 떡 상에 올려진 12개의 떡입니다. 이 떡은 7일(매안식일)에 한 번씩 ‘더운 떡’으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물려 낸 떡(식은 떡)은 제사장들이 먹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일반인이 먹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진설병’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떡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사장 아히멜렉은 배가 몹시 고파 하는 다윗에게 준엄한 율법을 어기면서 이 떡을 준 것입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의 이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밀밭 사이를 지나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안식을 범했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윗이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진설병)을 먹은 이 일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마태복음12:4).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당시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율법의 근본 정신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사랑’이고,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고픈 다윗에게 진설병을 먹게 한 아히멜렉은 율법을 형식적으로 자구적으로 준수한 자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라는 율법의 근본정신에 충실한 사람이었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안식일 논쟁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결론을 맺으십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태복음 12:7).


     이것은 율법을 형식적으로 자구적으로 지키는 행위보다 앞세워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의술행위를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따져 묻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생명이 어떤 것보다도 중요함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배고픈 다윗에게 스스로 율법을 어기면서 진설병을 먹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가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다가 안식을 법했다고 고발당한 제자들을 변호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비를 베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기(로마서13:8) 때문입니다. 사랑이 곧 율법의 완성(로마서13:10)이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보다 은총을 늘 앞세우고, 정죄하기보다 자비를 베풀 줄 알아,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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