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2월에 개최되는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 ‘외교 보이콧’을 하겠다고 공식선언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외교 보이콧이란 선수단은 올림픽에 참가시키되 정부 공식 대표단은 개·폐회식 등에 불참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달 양국 정상의 화상 정상회의를 계기로 일각에선 해빙 무드가 조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양국 갈등은 상대를 겨눈 비난·강경책을 잇따라 쏟아내는 데 멈추지 않고,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편가르기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올림픽 외교 보이콧의 단편적 명분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유린이다. 그렇기에 이번 보이콧은 중국의 지속적인 종족 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등 인권 유린을 문제삼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 후 처음 가진 화상 정상회담에서도 신장·위구르와 티베트, 홍콩 등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었다. 


    지금까지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한 나라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총 5개국이다. 미국과 함께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속한 국가들이다. 일본은 어중간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택했다. 베이징 올림픽에 장관급 고위인사를 보내지 않고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파견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일본이 미국의 보이콧을 완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2022년은 중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인 데다가, 중국은 일본의 최대 무역상대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방 선진국 중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각에선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인 프랑스가 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하는 건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가 이번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을 경우, 중국 또한 파리 올림픽에 보복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 동계 올림픽을 준비 중인 이탈리아가 외교적 보이콧에 불참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요 동맹국들이 잇달아 동참하면서 해외 언론의 시선은 이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에 동참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이유는 남북관계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보이콧 선언 직후 전 세계 110여 국을 초대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상당한 온도차이를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 겨냥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중국과 러시아가 아닌 백신거부에 있으며, 이의 원인을 ‘가짜뉴스’에서 찾았다고 했다. 미국은 보이콧을 천명했는데, 한국은 중국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의 외교 보이콧은 스포츠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고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에서는 인권단체들과 공화당이 중국의 인권 탄압에 대응해 아예 올림픽에 선수단도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초당적으로 형성돼 있다. 미 의회도 바이든 행정부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 보이콧과 보조를 맞추며 대중(對中) 강경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 상무부는 조만간 중국의 인공지능기업인 ‘센스타임’을 ‘중국 군산 복합기업 명단’에 올릴 계획이다. 이 명단에 오른 기업은 미국인의 투자가 금지된다. 미 정부는 센스타임의 최첨단 안면 인식 기술이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을 감시하는 데 활용됐다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을 상대로 ‘대량 학살 및 반인륜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는 규탄과 함께 유엔 조사를 촉구하는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또, 문 정부가 그렇게 바라는 종전선언을 강력반대하는 공동서한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앞으로도 보냈다. 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반대하기 위해 미 의회가 집단행동에 나선 건 처음이다.


    사실 위구르족 상황은 식민 치하의 우리와 비슷하다. 억압받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국이 종전선언 같은 쇼를 위해 이를 모르는 척하고 최고위급 축하 사절을 보내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이슈가 되는 인권은 정치 개념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마땅히 앞장서서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인권위 행사에서 “항상 인권을 위해 눈 뜨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10월 전 세계 43국이 유엔에서 중국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을 비난하는데 한국은 불참했다. 성명에 적시된 ‘잔혹하고 비인간적 고문, 강제 불임, 성적 및 젠더 기반 폭력, 아동 강제 분리’에 눈을 감은 것과 다름없다. 청와대는 한국이 G7에 버금가는 위상에 올라섰다고 자찬하지만, 정작 G7이 한 목소리로 인권 수호를 외칠 때는 한국은 없었다.


    중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파키스탄 등이 포함된 상하이협력기구에 이란까지 끌어들이며 반미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미·중이 벌이는 전쟁은 미래 국제 정치 질서와 첨단 과학기술 패권을 놓고 벌이는 건곤일척의 대결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확실한 동맹국으로 여기는 한국의 반응이 미지근한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국이 베이징 올림픽에 정부 인사를 보낼 경우 미국의 대중 포위전선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할 경우 감수해야 할 경제적, 정치적 타격도 있다. 무엇보다 베이징 올림픽을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에 반전을 꾀할 계기로 삼으려는 문 정부의 계획도 틀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이번 올림픽에서 남·북·미·중 정상이 한자리에 만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발판을 마련하는 ‘어게인 평창’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왔지만, 미국의 보이콧 선언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미·중의 전략 경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부의 마지막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은 별개다. 북한·중국의 눈치를 보며 굴종한 결과는 허무하다. 핵시계는 더욱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북한과 중국은 한국을 존중하기는커녕 만만한 호구 취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보이콧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도 아니어서 당장 뭘 결정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다만 미·중 대결의 파도가 전방위에서 몰아치는 이 시점에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기본 원칙과 지향점을 근본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풍랑이 거센 때일수록 확고한 원칙과 지향점을 정해놓고 일관성 있게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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