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담임목사

    성경에 등장하는‘다윗과 요나단’은 참으로 신비로운 우정의 관계입니다. 특히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 신비로움을 드러냅니다. 요나단은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다윗을 사랑”(사무엘상20:17)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을 사랑했던 요나단이 죽었을 때, 그의 죽음 앞에서 다윗은 자신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다윗이 말하고 있는 요나단의 이‘아름다운 사랑’,‘기이한 사랑’, ‘여인의 사랑보다 더한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사랑일까요? 세속적인 관계에 물들어버린 범인들로서는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사무엘서 기자는 두 사람의 이 특별한 우정을‘인자’(헷세드)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 왕의 손에 죽을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다윗은 요나단을 찾아가 이런 간청을 합니다.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말 그대로 다윗은 요나단에게 ‘인자’를 행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요구에 요나단도 역시 다윗에게 ‘인자’를 요구합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사무엘상20:14),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사무엘상20:15). 사실 ‘인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헷세드’는 우리말로 그 의미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은 이 ‘헷세드’의 사랑에 근거하여 서로에게 ‘인자’를 요청하는 언약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나단이 다윗에게‘헤세드’적 언약을 이행할 것을 약속하고, 다윗에게도 이‘헤세드’적 언약을 이행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사실 요나단은 다윗과 이런 언약을 맺지 않고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차기 왕권 경쟁자인 다윗을 반역자로 체포하여 아버지 사울 왕에게 넘겨줌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구태여 다윗과 이런 언약을 맺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나단은 다윗이 자신의 아버지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사무엘상20:13)라고 다윗을 축복하는 말 속에 다윗이 왕이 될 것을 그가 이미 알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사울이 왕이 될 때 하나님이 함께하셨던 것처럼, 다윗이 다음 왕이 되어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축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끊어내실 것(사무엘상20:15)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끊어 버리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자신의 계획과 섭리를 방해하는 모든 세력을 멸절시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며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을 치실지어다”(사무엘상20:16)라는 축복의 말로 언약 체결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이 치실 이 다윗의 대적이 누구입니까? 자기 아버지이고, 다윗이 왕이 된 후의 자기 가문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요나단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다윗의 대적을 치실지어다”라고 다윗을 축복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하실 일과 그 계획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요나단은 다윗을 향한 사랑 때문에 위험을 자초했습니다. 그를 향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원수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처럼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철저히‘인자’(헤세드)에 기초한 것입니다. 즉 ‘언약적 사랑’입니다. 이 언약은 단순히 다윗과 요나단 두 사람간의 인간적이고 인본주의 적인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에 근거한,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 신앙(코람데오)은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것입니다.‘너와 나’의 모든 장벽과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코로나의 위험과 바쁜 일상의 연속이 온라인의 발전을 이끌었는지는 몰라도 친구 간의 우정, 성도 간의 우정은 참 많이도 약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진실한 크리스찬의 우정은 두 사람간의 수평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로 확장되고 확대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문제를 끌어안고 함께 고민하며, 기꺼이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신앙적이고 영적인, 다윗과 요나단 같은 우정이 참으로 그리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베풀어 주신 ‘인자’(헤세드)가 , 곧 내가 베풀 ‘인자’(헤세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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