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부동산 재벌 상속자인 로버트 더스트(78)가 사건발생 21년만에 친구 살해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캘리포니아주 1심 법원에서 배심원단은 더스트가 2000년 오랜 친구였던 수전 버먼(사망 당시 55세)을 살해한 1급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는 39년간 3개 주에서 3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아온 그가 받은 첫 유죄 평결이다. 그는 1982년 아내인 캐슬린 매코맥 더스트 실종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의 오랜 친구 버먼을 살해한 혐의를 받아 왔다. 당시 버먼은 자택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더스트가 캐슬린 살해 사건의 은폐를 도왔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버먼을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또 2001년 텍사스 주에서 도피생활 중 자신의 신원을 알아낸 이웃 모리스 블랙까지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그는 뉴욕의 대형 부동산 회사 '더스트 오가니제이션' 설립자인 조셉 더스트의 손자이자 시모어 더스트의 아들이다.  그는 오랫동안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왔지만 그의 범죄는 엉뚱한 곳에서 발각됐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촬영 중에 죄를 시인하는 혼잣말을 하면서 결국 범죄행각이 들통난 것이다. 그는 촬영이 끝난 뒤 마이크가 켜진 것을 모르고 화장실에서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물론 그들을 다 죽여버렸지"라고 혼잣말을 내뱉았고, 검찰은 이를 자백으로 판단했다. '더 징크스'란 이 다큐멘터리는 2015년 HBO에서 방영됐으며 더스트는 마지막 편이 방영되기 전날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30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의 최악의 미제사건이 풀렸다. 연쇄살인 용의자 조셉 제임스 드앤젤로(72)가 42년만에 체포된 것이다. 전직 경찰로 밝혀진 그는 1970~80년대 캘리포니아 주 일대에서 40여 건의 강간과 10여 건의 살인을 저지른 혐의를 받아 '골든 스테이트(캘리포니아 주) 킬러'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는 검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한번도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인물이다. 40여년간 미궁에 빠졌던 이 사건이 해결된 데는 DNA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DNA가 1980년 벤츄라 카운티에서 일어난 부부 살해사건에서 검출된 것과 동일했던 것이다. 그의 첫 범죄는 1976년 여름에 일어났다. 새크라멘토 카운티의 한 가정집에 남성이 침입, 젊은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단순 강간 사건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범행이 반복되며 1년 뒤에는 새크라멘토 일대에서 성폭행당한 여성이 수십명에 달했다. 그러다가 갈수록 수법이 대담해졌고, 13세 소녀를 가족들이 집에 있는 상황에서 성폭행했는가 하면, 남편이 있는 데서 아내를 강간한 뒤 부부를 모두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976년부터 1986년까지 10년 동안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총 120여건의 주거침입·강도, 최소 12명 살인, 최소 45명 강간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1986년 어바인에서 18세 여성을 성폭행 후 살해한 것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2016년 FBI가 5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고, 지난 2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책 'I'll Be Gone in the Dark'가 출간되면서 재조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결국 잡혔다. 이 사건은 42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한국의 미제사건도 많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1년에 발생한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다.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에 살던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사건이다. 당시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기도 했으며, 전국 초등학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이 사건은 전 국가적인 사건으로 떠올랐다.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사인력이 투입되었다. 그러던 중 실종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4구의 유골과 신발 5켤레가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에서 500m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반면,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팀은 감정 결과 명백한 타살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후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범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그놈의 목소리’의 모티브가 된 1991년 이형호 군 유괴살인사건,  1998년 신사동 단란주점 살인사건, 1999년 대구 효목동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 2000년 인천 놀이터 여자아이 살해 사건, 2001년 배산 여대생 사건, 2004년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사건, 2005년 서울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 2008년 의정부 여중생 살인사건, 2009년 제주 보육교사 사건 등은 10년이 넘도록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은 9.11 테러 20주년을 맞았다. 미국이 9·11 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2001년 10월 11일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현직 검사가 자신의 집에서 외부 총격을 맞고 49세의 젊은 나이에 절명했다. 희생자는 연방 지검에서 화이트 칼라 범죄 수사를 담당하던 엘리트 검사 토머스 크레인 웨일스였다. 올해로 사건 발생 20주기를 맞았지만 용의자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1952년생인 웨일스 검사는 메사추세츠주 출신으로 하버드대 학부를 졸업하고 호프스트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1983년에 임관해 화이트 칼라 금융 사기 범죄의 수사와 기소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집 지하실 서재에서 PC로 워드를 치고 있었다. 그때 지하실 창문을 뚫고 그의 몸을 향해 여러 발의 총탄이 발사됐다.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간 웨일스 검사는 다음날 끝내 숨을 거뒀다. 20주기를 맞아 최근 연방수사국(FBI)이 용의자 와 관련한 중요 제보 현상금을 당초 100만 달러에서 250만 달러로 확 높였다. 이번 현상금 인상을 계기로 웨일스 검사와 당시의 비극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FBI와 법무부, 연방검찰, 경찰은 범인을 찾기 위한 협력 수사조직인 시애틀 검사 살인 사건 태스크포스(SEPROM)까지 만들었지만,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다. 이로써 사건은 미 역사상 최장기 미제 검사 살인사건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20년, 30년, 40년 이후에도범인을 검거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반드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지고 있다. 20주기를 맞은 웨일스 검사 사건을 돌아보며, 21주기에는 반가운 소식을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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