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 특히 결혼을 준비할 때 양쪽 가족은 상대방 가족에 대한 걱정과 의심으로 분주하다. 두 가족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결혼을 통해서 합치게 되므로 그만큼 새로운 관계가 발생한다. 나는 새로운 관계 중에서도 장모와 사위 관계야말로 제일 소중한 관계라고 주저없이 밝히고 싶다. 나는 결혼한 지 겨우 십 년이 되었는데 작년에 한국을 길게 방문하는 동안 장모와 사위 관계가 상상 못할 정도로 발전 되었다.

한국을 방문한 이유는 한국어를 평생동안 효과적으로 독학하기 위하여 기본 한국어 습득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처갓집에서 일상생활 용어 습득을 위해 장모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장모님께서는 원래 한국 공립 초등학교 교사셨다. 포항에 사셨기에 포항 사투리(예를 들면 ‘알아 들었나?’를 장모님은‘알아먹었나? 라고 말씀하신다)를 간간히 사용하시지만 장모님께 알맞은 표현과 문법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알다시피 언어를 공부할 때는 말만 발전하면 안 된다. 그래서 어학당 선생님의 권유대로 일기 쓰는 습관을 굳히려고 마음 먹었다. 아내는 한국 어머니들처럼 아이들 교육에 정신 없기 때문에 아내에겐 일기 수정을 부탁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어 문장을 구사해야 하는 내 마음을 이해하시는 장모님께서 나의 일기를 매일 수정해 주셨다.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어머님의 감춰진 성격을 많이 알게 됐다. 예컨데‘ 복잡한 문장을 쓰지 말고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낫다’ 라고 몇 번을 일러 주셨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냥 살라는 말씀이시다. 장모님은 퇴직 하셨는데도 근무하실 때보다 더 바쁘시게 생활하시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는 새로운 취미로 영어공부를 택하셨다. 내가 장모님께 일기 검토를 부탁했기 때문에 장모님은 나에게 자신이 쓰신 영어 일기를 검사 해달라고 하셨다. 우리는 서로 평등한 입장이 된 것이다.

情(정)이란 단어의 의미를 두고 나는 십년 넘게 피했다. 한국유학생, 방문교수, 대학생을 만나 대화 중에 정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기억 못할 만큼 많았다. 내가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고 한국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정의 뜻을 발견하기 못했을 거같다. 이번 한국 생활에서 정의 성질도 파악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장모님과 일기 작성을 같이 돕는 과정에서의 마음을 묘사하면 정이 들었다는 표현이 가장 맞지 싶다.

나는 장모님께 단순히 언어만 배운것이 아니었다. 요리, 생활철학, 정원수에 대한 교훈도 받았다. 아내와 결혼하기 바로 전에 김포에 있는 식물가게에서 작은 청색화분의 향나무를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그 후 우리가 귀국하게 되어 그 나무를 장모님께 드렸는데 지금까지 그 나무를 키우고 계신다. 그 예쁜 나무 옆에는 한국 아파트 베란다 길이만큼 여러 나무와 아름다운 꽃들이 정리되어있다. 나무 이름과 야생화 이름까지 다 아시는 장모님께서는 아침마다 식물과 꽃의 건강을 살펴보시고 물을 주신다. 이제 나는 여기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작은 소나무를 키우기로 했다. 장모님의 솜씨를 가져왔는지 봐야겠다.

부지런하다라는 말은 장모님의 삶의 성격을 제일 잘 나타낸 것이다. 맛있는 쑥떡을 만들기 위해 일찍 일어나셔서 새벽시장에 가서 쑥을 한 자루 사신 적도 있다.그 날로 쑥을 다 다듬으시고 씻고 또 씻고 삶으신다. 어떤 한가지 일을 결심하면 그 일을 마칠 때까지 다른 일은 결코 못하신다. 대단한 습관이다. 6.25를 겪은 세대에 이런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끝까지 해야하는 끈기라고 설명할 수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꼭 가르쳐야만 할 특징이다.

장모님은 학교에 보낼 아이들을 깨우려고 음악을 켜 놓고 아침 된장국을 끓이곤 하셨다. 그것이 너무 좋은 생각이라 여기서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아이들은 잠에서 깨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아침을 즐겁게 시작할 수 있다. 부모는 힘들게 아이를 깨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장모님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녀를 동경할 정도로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셨다. 그러나 요즘은 교사시절 친구들과 산에도 다니고 음악회에도 가고 전시회 구경도 다니시며 삶에 대한 해답에 관련된 어렵고도 신비한 질문을 논하신다. 그래서 한번은 내가 장모님께 삶에 대한 난처한 질문을 여쭤봤다. ‘우리 인간들은 욕심을 많이 가지는데 그 욕심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장모님의 지혜로운 답은 ‘ 나이 들수록 저절로 사라진다.’ 것이었다.

지금도 장모님께 전자 우편(이메일) 일기를 보내고 장모님은 내 글을 수정해 주신다. 미국 시간 밤에 원문을 보내면 한국시간 밤새 고치셔서 바로 바로 답장을 보내 주신다. 나는 인간관계의 참으로 중요한 것을 얻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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