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6월11일부터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유럽 지도자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가장 먼저 미국으로 초청해 화제가 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임기가 3개월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이나 프랑스 정상보다 앞서 초청한 건 그의 리더십과 인기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은 독일인의 수치라며 또다시 사죄했다. 메르켈 총리는 대국민 팟캐스트 방송에서 6월22일은 80년 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날이며, 이로 인해 수백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우리는 그 후손들에게 빚을 졌지만 화해의 손을 내밀어준 이들에게 깊이 감사한다며, 독일이 그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화해를 받아준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39년 소련 슬로바키아와 손잡고 폴란드를 침공했었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 당시 독일 총통은 장기적으로는 소련이 독일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해 소련을 배신하고 1941년 6월 22일 침공했었다. 메르켈 총리는 재임 중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여러 번 사과했다. 2013년에는 독일 뮌헨의 옛 나치 강제수용소인 다하우 추모관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마음에 가득 차오른다”고 했다. 2019년에는 폴란드의 옛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방문해서 “독일이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 상상할 수 있는 선을 넘은 범죄 앞에 진심으로 부끄럽다”고 참회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가 자국의 과거사와 관련해 치부를 드러내고 사과하는 데에는 정치적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국내 보수 세력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 국민들의 인기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는 9월 정계은퇴를 앞둔 메르켈 총리는 여전히 국민의 지지와 세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메르켈은 오는 9월 말 독일 총선이 치러지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작년 마지막 날, 당의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재임기간 중의 마지막 신년사를 했다. 그리고 6분동안 이어진 박수는 전세계로 울려 퍼졌다. 독일도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지만 그 와중에도 메르켈의 지지율은 더 올라갔다. 특히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 적자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독일 국민이 앞으로 국가 채무 급증으로 인해 분담해야 하는 몫을 설득한 부분은 당시 재임 15년을 맞은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또한번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리더십은 위기일 때 더욱 돋보였다. 취임 첫해였던 2005년 말, EU 정상회의에서 향후 7년간의 예산안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었던 적이 있는데, 그가 합의를 이끌어 냈다. 프랑스가 도맡아 온 유럽의 맹주 역할이 독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독일 경제를 위험에서 건진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 국가들의 부채 비율이 모두 상승했지만, 독일은 나라 살림을 아껴서 부채비율을 되려 20포인트나 낮췄다. 그의 사생활 또한 국민의 지지도에 한몫하고 있다. 그는 총리가 되기 전에 살던 아파트에 그대로 살면서 퇴근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서 장을 보고 집안일도 도우미 없이 남편과 함께 하는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고 있다. 정치 인생 내내 스캔들도 없었고 늘 검소한 차림이었다. 한 기자가 “왜 항상 같은 옷만 입느냐”고 물었더니 메르켈은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이라고 대답했던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녀의 삶이 존경스럽고 이런 위대한 지도자를 둔 독일이 부럽다.


    사실 그동안 메르켈 총리가 한국에서 자주 거론된 것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때문이었다. 2015년 3월에 방일하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이 끝나고 난 후 메르켈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독일의 과거사 청산 사례를 거론하며 " 독일은 과거를 직시했으며, 주변국들의 관용이 있어서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모든 관계국들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평화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라고 일침을 놓았다. 물론 일본은 "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사건들의 원인이 서로의 경위가 달라서 양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라고 둘러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속좁은 마음씀씀이가 훤히 보인 에피소드다.  메르켈 총리의 업적은 까도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와 같다. 너무 많은 업적과 행보로 글로 다 담을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권 16년째인 이 여성 지도자의 인기가 임기 말년에도 63%로 차기 총리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인도 매체 더스테이츠맨은 지난 주말 “메르켈은 전 세계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리더이며 겸손, 균형, 안정감, 상식의 미덕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메르켈은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이자, 16년동안 4년의 임기를 4차례나 연임함으로써, 11년을 집권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제치고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가 되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카리스마가 없어도 얼마든지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그는 정치에 입문한 지난 25년동안 단 한 차례의 스캔들이나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다. 어떤 친인척 비리도 없었다. 사진에 찍히기 위한 목적으로 베를린 거리에 나가지도 않았다.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앞선 사람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이번에 메르켈 총리를 어떤 리더들보다 먼저 미국으로 초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메르켈 총리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역대 한국 정부는 물론, 콜로라도 한인 사회에서도 과연 저렇게 오랫동안 국민들과 교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지도자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개인의 명예와 영욕을 추구하는 대신, 진심으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부재가 못내 아쉽다. 있을 때 존경받고, 떠날 때 박수 받을수 있는 리더가 한국뿐 아니라 이곳 한인사회에도 등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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