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의 한 옷가게에서 한 중국계 여성이 직원의 뒤통수를 치고, 이를 말리는 매니저의 뺨을 가격했다. 뺨을 맞은 매니저는 볼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눈의 실핏줄까지 터졌다. 알고보니 폭행을 행사한 이 여성은 주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이었다. 여론이 들끓자 사건 발생 50일만에 벨기에 대사관은 SNS 계정을 통해 올 여름 피터 레스쿠에 주한 벨기에 대사의 임기를 마치는 것이 양국간의 관계에 가장 유익하다고 판단했다고 알렸다. 그리고 대사 부인은 면책특권을 포기해 경찰 조사에 응했다. 하지만 느닷없는 이번 발표는 실효성이 전혀 없다. 앞서 대사 부인은 사건 직후 사과문도 뒤늦게 반말로 올리고 병원에 입원한 뒤 경찰 소환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사건발생 한 달이나 지나서야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경찰서에 전달했다. 이는 현행 한국법에 따라 처벌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결국 형사 처벌은 피해놓고 선심쓰듯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을 두고 특권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이 불거지면서 남편인 대사도 벨기에로 돌아간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 귀임 조치도 사실상 2018년 7월에 부임해 3년을 채운 셈이어서 큰 의미가 없다. 우려했던 대로 벨기에 대사 부인의 폭행사건은 면책특권 뒤에 숨어 불기소로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과 그 가족은 주재국의 형사처벌 절차를 면제받는다는 ‘외교관 면책 특권’은 196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결된 빈(비엔나) 협약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192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살인죄도 피할 수 있는 것이 면책특권일 정도로 만능특권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본국에서 이들에 대한 사법적 보호를 포기하면 특권은 사라진다. 지난해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부부가 짝퉁 가방을 판매하다 적발됐는데, 미국이 면책특권을 포기하면서 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또, 2016년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직원이 경찰을 밀치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했는데, 당시 뉴질랜드도 이들에 대한 면책특권을 박탈해 경찰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물론 한국도 면책특권을 사용한다. 2017년 주 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외교관이 현지 남성 직원을 성추행한 사건, 2016년 칠레에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한국 고위 외교관도 면책특권을 내세워 한국에서 책임지도록 했다. 이렇게 각국은 욕을 먹더라도 일단 면책특권을 쓴 뒤 해당 외교관을 본국 송환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규정상으로는 범죄 외교관을 추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냉전시대때나 사용했던 방법이다. 그나마 피해 국민들에게 대안으로 꼽히는 게 민사소송이다. 치료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면책특권의 범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비용과 절차를 고려한다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벨기에 대사 부인의 경우는 공무가 아닌 쇼핑 중의 범죄여서 면책특권의 예외가 될 수 있다는 논리도 나오지만, 소송해봤자 재산 가압류 같은 강제집행이 불가능해 실효성은 없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람들이 소송까지 신경쓸 겨를은 없다. 그냥 묻고 사는 수 밖에. 


    한국 내에서 지난 5년동안 음주운전 폭행 절도 등 외교 사절이 일으킨 사건사고는 69건으로 드러났다. 2019년 11월에 발생한 음주운전 가해자는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직원이었다. 당시 차 안에는 와인 술병이 4병이나 있었다. 경찰은 만취해 사고를 낸 걸로 보았지만, 면책특권을 가진 외교관이라 그냥 귀가시켰다. 같은 해 7월에는 주한 르완다 대사관, 8월에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 2017년 주한 멕시코 대사관 소속 군 장교는 함께 일하던 여성 직원을 성추행했고, 주한 터키 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2019년 한 클럽에서 술에 취해 종업원을 폭행했다. 매년 두자릿 수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벨기에 대사 부인의 폭행사건을 제외하고도 올해 1분기에만 모두 4건의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외교관의 면책특권 뒤에 숨어 한국에서 처벌까지 받은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하지만 음주측정 거부하는 외교관, 면허 취소상태에서 운전대 잡은 외교관, 옷 가게에서 직원 뺨 때리고도 면책받는 대사 부인, 사람을 다치게 해도 외교관이라서 풀려나니 국민들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한국 국민들은 도로위에서 검정색 혹은 파랑색 차량 번호판에 '외교' 라고 적힌 차량을 보면 아예 피해가라고 서로에게 충고한다. 괜히 사고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피해는 전적으로 한국 국민이 봐야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피해를 입었지만 정작 외교부는 외국 공관의 품위손상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정확한 사건 내용과 형사처벌 현황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빈 협약은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공관 직무의 효율적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 외교관들에게 각종 특권을 제공한다”고 정해놨다. 하지만 면책특권을 악용하고, 특권의 일탈이 반복되면서 국가간 외교 업무 수행을 위해 마련된 빈 협약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사실 외교관의 면책특권은 어느 나라에서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욕의 경우 한해 외교관 차량의 불법주차 과태료가 16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럴 때마다 과도한 면책특권을 줄이자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192개국이 가입한 다자간 협약을 고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외교관은 각 국가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대열에 선정될 수준이면 ‘양심’ 정도는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 협약의 이면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 면책특권에 손을 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군다나 면책특권의 조항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전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이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조항을 파기 혹은 변경할 경우에는 범국가적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허무하게도 지금 우리로서는 한국 주재 외교사절과 그 가족들이 준법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랄 수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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