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첫 대면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정상회담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미정상회담이 조속히 개최된 것은 그만큼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양 정상의 확고한 의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 우선주의만을 내세웠던 트럼프와는 달리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과 세계의 이익을 함께 관철하는 노련함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회담의 요지는 백신공급, 대북관계, 중국견제, 반도체기술 협력 등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백신 지원 요구에 대해 한미동맹 차원에서 한국군 장병 55만명에게 백신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이 상반기 백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인도 등 다른 나라들보다 코로나19 상황이 좋은 만큼, 일반인들에게 백신을 지원하는 것보다 미국과의 접촉 가능성을 내세워 군인들에게 지원하는 것이 명분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한국이 미국에게 먼저 백신을 빌리고 나중에 되갚겠다는 백신 스와프는 거부당했지만 그래도 동맹 강화의 의지는 표출된 것이다. 대북정책 부분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성 김 미 국무부 차관보 대행을 북한과의 협상을 담당하는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하는 등 북한과 대화에 나설 준비가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김정은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조속한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반면 바이든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한 것이어서 한미 정상간 온도차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과의 비핵화 공조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동안 한국이 '친북'이었다는 오해를 다소 벗을 수 있었다. 또, 미국은 한국이 중국 견제에 동참할 것도 강조했다.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남중국해 문제, 쿼드문제 등이 회담, 공동성명,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두 거론되었다. 이는 동맹국으로서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에 문 정부가 호응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대북정책에서 협력을 얻기 위해 미국의 중국 견제에 어느 정도 따르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의 또다른 성과를 꼽자면 미사일 개발의 족쇄를 풀었다는데 있다. 현재 800㎞로 제한되어 있는 탄도미사일 사정거리 제한이 없어지면 중국을 사정권으로 하는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 미사일 지침 해제는 한국이 42년만에 완전한 미사일 주권을 확보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이 족쇄까지 벗게 되면 제주도에서도 북한 최북단까지 사정권에 넣게 된다. 그외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 의약품 등 한국 기업들의 강점인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이었다. 이는 안보 중심의 한미동맹이 경제동맹, 특히 첨단기술 동맹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은 군사적으로 보호를 받아왔던 약소국의 성격을 띠었지만, 첨단기술 동맹은 한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심지어 미국보다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특히 5G 산업은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인데, 여기에 한국의 참여를 적극 독려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 SK, LG 3곳의 기업 투자약정이 문 대통령의 방미길에 따라 갔다. 무려 44조원의 규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 4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대한민국 간판 기업 3곳의 최고경영자들에게 별도로 감사의 인사를 표했을 정도로 반겼다.  하지만 44조원은 한번에 주는 선물치고는 규모가 과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에 투자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청년 실업대란이 일어나고 있는 판국에 첨단 공장이 죄다 미국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 의회 및 한반도 전문가들은 문 정부를 노골적으로 의심하고 경멸하고 야유했다. 이번 투자금은 문 정부가 친북, 친중 노선을 중요시하면서 미국과 척을 진 대가일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 덕분에 한국은 55만 장병들의 백신을 확보했고, 미사일 사정거리도 해제되었다, 성 김 대북특별대표 임명이라는 깜짝 선물도 받았다. 순방 마지막날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모더나 간 백신 위탁생산 계약이 체결됐다. 44조원이 한미동맹을 수렁에서 건졌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첨단기술 동맹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사면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주재 미국기업 800곳을 회원으로 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에서 정상회담 직전에 이 부회장의 사면을 정식으로 청와대에 건의했다. 삼성전자가 바이든 행정부를 적극 지원하지 않으면 미국의 전략 파트너로서 한국의 위상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서한을 보낸 것이다. 그러면서 삼성에서 가장 중요한 이 부회장의 사면은 미국과 한국에 있어 최선의 경제적 이익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대한상공회의소와 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한국 경제단체들은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했다. 친문 핵심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도 마찬가지이다. 암참 회장이 말한 대로 삼성은 한국 기업이지만 세계적으로도 리더십을 가진 중요한 기업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문 정부만 모르는 척하고 있다. 정경유착은 원래 정치와 경제가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한국에서는 경제계와 정치권의 부정고리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을 환하게 웃게 만든 것은 바로  정경유착이었다. 그 배경에는 삼성전자·SK·LG·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의 통큰 투자 결단이 있었다. 이번 회담에서 예상보다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현 정부의 탁월한 외교술이 아니라 한국의 간판 기업들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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