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시즌이 다가왔다. 코로나 팬데믹을 견뎌낸 시니어들이 4년의 고등학교 정규과정을 마치고,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한국 고등학교 졸업식도 큰 행사이지만,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졸업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한국에서는 고교 졸업생의 90% 이상이 대학교에 입학하거나 아니면 재수생활을 시작한다. 대부분은 대학이 최종 목표이다. 그래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은 졸업식에 참석을 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사정은 다르다. 졸업생의 30~40%는 자기가 원하는 일과 목표를 향해 대학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고교 졸업식은 졸업생들에게 새출발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학교 졸업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졸업생들은 몇 주 전부터 타주에 있는 친척에게까지 졸업 티켓을 보내는가 하면 근사하게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좋은 대학을 가든, 사회에서 일을 시작하든, 이들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일은 생애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이다. 필자는 지난 18년동안 덴버에서 현장취재를 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식에 여러번 참석했다. 첫번째 취재차 참석했던 졸업식은 체리크릭 고등학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인 2세가 수석졸업생으로서, 발레딕토리안(졸업생 대표)에 선정된 것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졸업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학교의 크기가 웬만한 대학교 수준이어서 놀랐다. 또, 한국과는 달리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학사모를 쓰고 있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대학교에나 있을 스테디움에서 열린 졸업식은 수퍼볼을 방불케할 정도의 인파가 몰렸다. 식이 시작되자 졸업생들의 이름이 한명한명 호명되었고,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가족들과 참석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날만은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아이들이 어떤 대학을 갔든, 어떤 학점을 받았든 상관없이 그들이 보낸 4년을 칭찬했다.


    필자는 그후에도 한인 2세들의 발레딕토리안을 취재하기 위해 체리크릭 고교를 한번더 방문했었고, 스모키힐 고교, 체로키 트레일 고등학교에도 같은 이유로 들른 적이 있었다. 이처럼 한인 2세들이 발레딕토리안을 자주 해왔기 때문에, 필자는 웬만큼하면 발탁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레딕토리안에 선정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졸업생 대표로 선정되는 것은 큰 영예다. 12학년 2학기 내내 발레딕토리안으로 불리게 되는 것은 물론 졸업식에 멋진 장식이 있는 리갈리아(예복)를 입게 되며 가장 중요한 고별사를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졸업장을 받기 위해 무대에 잠시 오르는 다른 학생과는 달리 졸업식 행사 내내 무대에 앉아 있게 된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발레딕토리안이 되기 위한 성적요건은 기본적으로 비 가중치 평점이 최소 3.9에서 4.0이 되어야 한다. 고교 내내 평균 A 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주간포커스에서는 지난 몇 주간 명문대학교에 진학하게 된 학생들을 소개해왔다. 그런데 이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딴세상에 있는 아이들 같았다. 4년 내내 한번도 A 학점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그들이 해온 봉사활동 스토리에도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들의  이력서를 보고 있자면, 50세가 넘은 기성세대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롭다. 이들은 한순간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그동안 신문에 소개된 졸업생들은 공교롭게도 본사가 주최해온 청소년 문화축제의 출신들이 많았다. 2회 청소년 문화축제에서 대상을 받은 친구는 현재 CU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운을 입었으며, 5회 때 대상을 받은 친구는 프린스턴 대학에 당당히 입학해 본지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6회 때 대상을 받은 친구는 바이올린으로 올해 줄리어드 대학에 입학했으며, 이번에 프린스턴 대학으로 진학 소식을 전해온 친구는 3회 청소년 문화축제에서 인기상을 받은 친구였다.

 

    이 외에도 우리 청소년 문화축제에 참가했던 많은 친구들이 펜실베니아, 시카고, 노트르담, 노스웨스턴, 뉴욕, 스탠포드 등 우수 대학들에 진학했다는 소식이 지난 10년간 필자에게 전해졌다. 이들 중 대부분이 발레딕토리안에 선발되었다. 한인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청소년을 응원하는 한인사회의 대표자로서 여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큰아들의 성적표를 볼 때마다 전과목에서 A를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 고등학교 주니어인 아들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AP나 아너 과목 때문에 점수를 계산하는데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태까지 전과목에서 A를 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과목 A는 부모의 잔소리 정도에 비례해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발레딕토리안과 같이 잘하는 아이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항상 이슈가 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평범한 아이들이 훨씬 많다. 고등학교의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지금 당장 유명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주눅들 필요는 없다. 지금 꿈을 정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발견하지 못한 재능은 곧 발견될 것이다. 필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신문방송학과를 가게 될 줄 몰랐다. 고교 3학년 내내 이과공부를 했고 공대를 지원했었다. 하지만 재수를 하면서 문과로 전향했고 지금까지 신문을 전공한 덕을 보고 있다. 또, 서울대학교를 떨어지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든 지인은 지금 재벌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또다른 친구는 가기 싫었던 불어과에 진학했다가 졸업 전에 외무고시를 쳤고 자신이 원했던 외교관이 되었다. 필자의 주변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금 당장 일등이 아닌 아이들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다. 잘했건 못했건 졸업하는 모두가 대견하다. 그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4년을 버텼기 때문이다. 그들의 찬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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