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애틀란타에서 한인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여성 6명이 20대 백인 남성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전미 한인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용의자는 아시안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 3곳을 노렸고, 희생자의 대부분이 아시아계라는 점을 미루어본다면 이는 명백한 아시안 증오범죄다. 용의자는 경찰에 마사지 팔러가 자신이 끊고 싶은 유혹이었기 때문에 이들 비즈니스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 놓았다. 만약 계획적으로 인종증오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성 중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면, 우발적이고 정신병적인 문제로 간주돼 양형 기준이 훨씬 가벼워지기 때문에 범행동기를 성 중독으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SNS를 통해 코로나사태를‘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중국이 미국인 50만명을 코로나로 죽였다고 포스팅한 것과 총격 전 오랜시간 가게 주차장에 머물러 사건을 계획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미국내 아시안 증오 범죄는 1년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바이러스로 지칭되면서 확연하게 증가했다. 지난주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중국인 할머니가 길을 걷다가 미국 젊은이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했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지팡이로 백인 남성을 때려 오히려  백인 남성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장면이 공중파를 탔다. 할머니의 통쾌한 승리라는 댓글이  이어졌지만, 본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외출이 꺼려진다는 의견도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났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는 어느 때보다 인종차별적 범죄가 많이 발생했다.

 

     그중 샬러츠빌 사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샬러츠빌 유혈사태는 남북전쟁 당시 노예 해방을 반대해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남부연합군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가 결정되면서 촉발됐다. 동상 앞에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등의 피켓을 들고 행진 중에 시위대를 향해 자동차 한 대가 무자비하게 전속력으로 질주해 여성 1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었다. 결국 이 유혈사태 주범은 지난해 종신형을 받았다. 그의 임기 동안 발생한 또하나의 대표적 인종차별 사건으로 꼽히는 것은 지난해 5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미니애폴리스에서는 경찰의 잔인한 공권력 사용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발했고 시위는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도시마다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주 방위군이 투입될 정도로 시위는 과격해졌다. 이 과정에서 미니애폴리스, 시카고, 뉴욕 등 시위가 벌어진 주변에 있던 한인 150여개 업체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위조지폐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마약도 하지 않았으며, 범법 행위도 하지 않은 무고한 한인들이 고통을 받았다. 


      문득 시민권 선서를 했던 날이 떠오른다. 필자의 선서식은 덴버 다운타운 소재 법원에서 열렸는데, 그날 우리에게 일일이 시민권을 전달한 판사는 흑인이었다. 그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국민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미국 시민권자가 된 소감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명에게 주어졌다. 멕시코 출신의 한 남자는 미국에 와서 29년만에 시민권자가 되기까지 정말 긴 여행을 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고령자인 82세의 스리랑카 출신의 할머니도 미국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통역을 통해 전했다. 버마 출신의 한 남성도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고, 도중에 부모를 잃었지만 그들도 아들이 미국의 시민이 된 것을 기뻐하실 것라고 했다. 이날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36명이었는데, 이들의 출신국가는 19개국이나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따지고 보면 백인들도 우리와 같은 이민자 출신이지만, 백인들은 자신만이 미국의 주인인 양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주인 여부를 따진다면 원래부터 이 땅에 살았던 미국 원주민 인디언만 남기고 백인들 역시 미 대륙을 떠나야 한다.

 

      미국은 다민족국가이며 흑인 노예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에 이 나라의 아킬레스건은 항상 ‘인종주의’였다. 공교롭게도 샬러츠빌 유혈사태가 발생한 버지니아는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의 고향이다. 1776년,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고 썼다. 그런 곳에서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들은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를 연상케 하는  '하일 트럼프'  '하일 빅토리' 를 외쳤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보내면서 백인들은 흑인과 더불어 아시안에 대한 증오를 갈수록 심하게 표출하고 있다. 지금도 하루가 멀다하고 아시안들은 백인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이는 우리가 기대했던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흑인이든, 아시안이든 인종에 관계없이 자국의 국민이 인질로 잡혔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구출해냈다. 그래서 우리는 자국의 국민이라면 무조건 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던 미국을 위대하게 봤고, 그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잔상이 남아있는 지금의 미국은 흑인이나 동양인, 멕시칸 등 유색 인종의 국민들은 구할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미국의 인권을 언급할 때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는 노예를 해방시켰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외치면서 미국은 국민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가임을 선포했었다. 그런 링컨이 지금의 미국을 본다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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