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증오의 4년이 막을 내리고 미국 치유를 위한 조 바이든의 시대가 열렸다. 바이든은 역사상 유례없는 혼란과 갈등 속에 치러진 선거를 통해 제46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일주일 전 트럼프를 맹신하는 일명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 이라고 불리는 미국내 극단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회의사당에 난입한 초유의 사건을 보면서 전 세계는 경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도 바이든을 차기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각주 선거인단 투표를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부통령이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를 부추겼다. 이번 사건은 폭력 시위대가 의사당을 6시간이나 점령, 경찰관 1명을 포함한 5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로 번지면서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으로 남게 됐다. 250여 년에 이르는 미국 역사상 의사당에서 발생한 개별적인 테러나 시위는 있었지만, 적의를 품은 세력에 의해 의사당이 점령당한 것은 영국군의 워싱턴 DC 침탈(1814년) 이후 100여 년 만에 처음 벌어진 사건이다. 트럼프가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재검표를 통해 1만1780표를 더 찾아내라고 요구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조지아주의 조 바이든 승리를 뒤엎기 위한 명시적 압박이라는 점에서 탄핵감이다. 그는 대선 패배 후 재검표 소송을 내고 선거자금을 모으며 대규모 유세도 잇달아 개최했다.


    트럼피즘은 지난 2016 미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편 가르기와 극단적인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주류 백인들은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외국인 이주자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자 자신들을 위해 싸우는 트럼프 대통령을 구세주로 받아들였다. 트럼프는 4년 전 취임할 때 화합과 포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우선주의만 내세우며 지지층 결집을 위해 분열의 씨앗을 퍼뜨렸다. 지지자들의 분노를 유도하며 상대방을 향한 막말을 일삼고, 과장과 허위를 곁들인 먹잇감을 끊임없이 던져주었다. 그의 거짓말 혹은 과장은 2016년 대선 후보 시절 때부터 유명했다. ‘9·11 테러 당시 미국의 무슬림 수천명이 환호하는 것을 봤다’거나 ‘미국에서 살해당한 백인의 81%가 흑인에게 당했다’는 등 사회를 갈라놓을 만한 말을 서슴없이 늘어놨다. 그러한 막말들의 결과로 저소득·저학력 백인 남성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백악관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는 사적인 이해관계를 공적인 일에 슬쩍슬쩍 끼워넣기 시작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장녀 이방카를 외교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이 소유한 리조트나 호텔에서 회담을 하거나 외국 사절단이 숙박하도록 했다. 미 국민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주겠다며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 폐지를 압박하면서 미국을 지탱해 온 이민자를 미국 밖으로 내몰았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라서 반발이 거셌지만, 어느 순간 ‘트럼프는 그런 사람이니까’라며 비판에 인색해진 것도 사실이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도 트럼프는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외치며 지지자들의 분노 수치를 끌어올렸다. 반대자 만큼이나 지지층이 나름 견고했기 때문에 재선 성공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4년을 더 얻지 못하게 된 결정적 배경은 코로나19에 대한 안일한 대처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고 끝까지 졸렬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트럼피즘은 선동적인 정치 지도자가 극렬 주의자들을 움직이면 그동안 갈고 닦아온 민주주의 토대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퇴임 후에도 트럼프가 이와 같은 분열적인 선동을 이어간다면 의사당 난입과 같은 돌발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이로인해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트럼피즘을 극복하고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취임직전 바이든 당선인 측은 시급하게 처리해야할 과제로 코로나19, 경기 침체, 기후 변화, 인종 불평등 대응 등 4가지를 지목했다. 민심을 수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그의  대외정책은 다자주의와 가치·규범 외교로 요약된다. 다자주의는 국제 기구, 레짐(regime)에 대한 존중과 복귀, 우방들과의 협력 강화를 포함한다. 즉. 기본과 상식 선에서 국제관계를 해결한다는 의지이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공언하는 정책에는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환태평양 동반자협정 재가입 검토, 이란 핵협정복귀 검토 등이 포함된다. 이는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의 반전(反轉)이라 할 수 있다. 단 트럼프 정부가 내걸었던 '바이 아메리카' 정책은 미국산 제품 구매 독려를 위해 더 강화한다. 미국 내 불법 이민자 1100만 명을 구제하는 내용의 이민법 개정안도 취임 100일 이내에 의회에 송부할 계획이다. 트럼프의 사악한 퇴장을 보면서 새로운 행정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의 패배 원인은 전문 지식과 정상 절차를 무시했으며, 통합보다는 강경 지지자들에게 기댔기 때문이다. 또 유능한 참모는 내치고 아부하는 내 편만 등용했다. 트럼프는 다수의 국민에겐 보이지 않고 그들(극우주의자)에게만 보이는 옷을 입은 ‘벌거숭이 임금님’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던진 교훈은 있다. 비록 그의 대선 불복과 의사당 난입 사태는 미국의 흑역사로 남게 됐지만, 그로 말미암아 국민들의 가슴에는 강력한 민주주의 복원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2021년 1월 20일, 드디어 바이든의 시대가 열렸다. 가시밭길임을 알고도 미국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그 열정 그대로,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전진하길 바란다. 하루 속히 “미국이 돌아왔다”는 것을 전세계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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