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는 코로나19와 함께 버틴 시간이었다. 지난 1월 아이들 겨울방학 때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다녀왔을 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삶을 지배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처음 창궐했던 중국 우한이 봉쇄되고, 이탈리아에서 코로나로 인해 하루에 수백 명이 죽는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도 미국에 사는 우리는 남의 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저렇게 될 일이 없을 것이라며 교만했다. 하지만 3월 코로나 팬데믹이 공식화되면서 미국은 그 어느 국가 못지않게 우왕좌왕했다. 손 세정제와 마스크는 5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풀리기 시작했고 그로서리 매장에서는 연일 사재기 몸살로 화장지와 페이퍼 타올 선반은 텅텅 비었다. 계란과 우유, 빵 등의 식품들은 물론이고 스파게티, 캔 종류나 스팸 등의 저장 식품들은 동이 났다. 한동안 화장지는 한 가정당 한 묶음만 구매가 가능했고, 코스코에서는 화장지와 물을 먼저 사겠다며 싸움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미개한 국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약육강식의 장면들이 여과없이 전세계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면서 미국은 체면을 구겼다. 심지어 미국은 국민들에게 코로나의 심각성을 가장 늦게 공개한 국가였다. 심각한 상황을 알면서도 마스크와 같은 생활방역 지침을 언급한 것은 팬데믹이 시작된 후 두어 달이 지나서였다. 또, 대통령이 나서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아 국민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개인방역이 무너진 또 다른 이유는 지난 11월에 치러진 선거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화당 측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미국내 코로나 사망자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9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현장 유세를 진행했다. 결국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의무 격리기간인 2주가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세를 다녔다. 그 결과 그가 다녀간 지역마다 확진자 수는 그 전 주에 비해 곱절이 넘었다. 최근 질병본부는 마스크로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 절반이나 된다는 통계결과를 내놓았다.


    결국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많은 나라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얻었다. 정부를 믿었던 국민들은 지난 10개월을 지옥 속에서 살았다. 이로 인해 재미 교포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천대와 눈총을 받았다. 미국으로 이민와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청소 허드렛일을 해도 한국에서 미국 동포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올해 미국 교민들은 코로나가 우글거리는 나라에 사는 안쓰러운 동포, 코로나에 걸려도 치료 한번 제대로 못받고 집에서 견뎌야 하는 복지 후진국에 사는 사람, 병원 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병원비가 비싼 나라에 살고 있는 불쌍한 동포 취급을 받았다. 이런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미국은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에 등장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세계 최강대국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11월 선거는 역대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대통령을 갈아치웠고, 연방의회의 판도를 바꾸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지 9개월 만에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해 발 빠르게 백신 접종도 시작했다. 필자에게는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사진이 있다. 2017년 뉴저지주 뉴저지시티 리버티 골프장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개막식 때,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간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그것이다. 소속 당과 이념은 달라도 전직 대통령들이 웃으면서 어깨동무하며 함께 설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4년의 행보는 우려의 목소리를 자아냈지만, 전직 대통령들은 당과 상관없이 애국심이란 공통분모로 미국의 존재를 더욱 각인시켜 왔다.

 

    이번에도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오바마와 부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시 뭉쳤다. 오바마는 백신 승인 직전에 “최고 감염병 전문가 앤서니 파우치가 백신 안전성을 확인해주면 TV에 출연해 접종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부시도 비서실장을 통해 “백신 접종 촉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CNN에 전했고, 클린턴도 “TV에 나와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세 전직 대통령의 코로나 대응 의기투합에 대해 공영라디오 NPR에서는 “백신접종을 위한 홍보 효과를 내는 데 전직 대통령보다 나은 인물은 없다”면서 “그들이 뭉치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평했다. 세 전직 대통령의 스타 파워라면 코로나 백신 접종에 회의적인 미국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내 코로나 하루 평균 사망자가 9·11테러 때 희생된 2,800명을 웃돌자 “매일 9·11테러가 일어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 전직 대통령의 백신 접종 홍보는 효과가 클 것이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미국 대통령들이 뭉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 10월 텍사스주에서 열린 허리케인 이재민 돕기 자선음악회엔 지미 카터(민주당)와 조지 H W 부시(공화당), 부시(공화당), 클린턴(민주당), 오바마(민주당) 등 5인이 함께 무대에 올라 단합을 촉구한 적이 있다. 특히 파킨슨병을 앓던 조지 H W 부시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감동을 줬다. 그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도 클린턴과 함께 모금 캠페인을 한 바 있다.  지금 미국은 코로나 백신을 충분히 확보했고, 정당이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 접종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경제지원금도 한 차례 더 진행될 것 같다. 미국의 국격을 우선하는 대통령도 임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서서히 전세는 역전되고 있다. 지난 1년은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고, 가족 간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극심한 코로나 블루도 겪었다. 하지만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백신이 나왔고 코로나 시대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는 코로나를 이겨낼 것이다. 다시는 ‘코로나 2020년’과 같은 시간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희망찬 신축년 새해를 다짐해본다. 코로나를 견딘 동포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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