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에 이르면서 콜로라도 내 정치 지도자들의 수난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콜로라도 한인사회에 친숙한 마이크 코프만 오로라 시장이 지난 10월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증상이 미미해 병원에 입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한인사회와 가장 밀접한 오로라시의 책임자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소식은 몇 주 동안 한인사회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특히 코프만 시장은 소규모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 짬이 날 때마다 오로라에 소재하는 한인 업체들을 방문해 격려해 왔던터라 그의 확진은 한인사회에 코로나가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었다. 이어 지난 주말에는 제러드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가 코로나 감염 확진판정을 받았다. 폴리스 주지사는 지금은 모두가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손씻기 등의 자가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평범한 내용으로 성명을 내보냈다. 하지만 그의 코로나 감염 소식은 우리에게 충격적이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콜로라도 뿐 아니라 미국 내 정치 인사들 중에서도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를 강조해온 폴리스였기에 그의 코로나 확진 소식은 당혹스럽다. 게다가 폴리스 주지사는 콜로라도 주민들에게 재택명령을 내릴 때도, 경기부양책을 발표했을 때도, 영업시간 단축 행정명령을 발동했을 때도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이었다. 혹시 방역마스크가 아닌 천마스크 하나만 믿고 주변을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


    이처럼 폴리스 주지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에 마이클 핸콕 덴버 시장도 논란에 휩싸였다. 코프만 오로라 시장과 폴리스 주지사는 본의 아니게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 꺼리는 될 수 있지만 비난까지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핸콕 덴버 시장의 경우는 다르다.  핸콕 덴버 시장은 사실상 콜로라도주에서 강력한 파워를 가진 정치인들 중 한 명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선포된 이후 콜로라도주와 덴버시는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이나 재택명령을 시작하는 시기들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콜로라도 주지사는 덴버시의 정책을 따라 갔고, 다른 도시들도 궁극적으로 덴버시의 정책을 바탕으로 내부적 조율을 해왔을 정도로 덴버 시장의 역량은 무척 컸다.  이런 중대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 나가야 할 덴버 시장이 위선적인 행동으로 주민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핸콕 덴버 시장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시민들에게 여행 자제를 촉구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을 들러, 미시시피까지 가족을 만나러 갔다. 그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트위터에 “가능한 집에 머물러 달라”며 “대면 저녁식사 대신 화상 모임을 열고, 최대한 여행을 피하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는 이 게시글을 남긴 지 30여분 만에 텍사스주 휴스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내와 딸이 머물고 있는 남동부 미시시피주로 가기 위해서였다. 추수감사절 일주일 전에도 그는 시청 직원들에게 “추수감사절 여행을 삼가할 것을 여러분께 촉구한다. 나도전통적인 대가족 모임을 취소하겠다”고 이메일을 통해 당부한 사실이 밝혀졌다. 비난은 생각보다 거세졌다.  9뉴스는 막 돌아온 핸콕 시장과의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사임의 생각이 없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콜로라도 내 유력일간지인 덴버 포스트는 핸콕 시장의 위선적인 행동이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쓰는 보건 당국 직원들의 호소를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고 꼬집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핸콕 시장은 깊이 후회한다고 사과를 했지만 사임하라, 주민소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민들에게는 집콕하라고 해놓고선 본인은 비행기타고 여행을 떠났으니 그의 언행불일치에 대한 책임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왕자나 공주의 삶도 나름대로 고달픈 법이다. 왕족이나 귀족들은 평상시에는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제일 먼저 희생되었다. 에티오피아 왕국의 안드로메다 공주는 괴물 고래에게 제물로 바쳐졌고, 트로이 전쟁에 나서던 그리스 군은 총대장 아가멤논의 딸을 희생시키고 나서야 출정이 가능했다. 이처럼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행동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이 말은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했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국가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난국을 맞이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총칼을 들진 않지만 지금은 하루에 수백명이 죽어가는 전쟁통보다 더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콜로라도의 지도자가 주민들을 기만하고, 자기는 괜찮겠지 하는 이성잃은 판단을 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가십거리가 될 만하다. 지난 10월 추석을 앞두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코로나 시국에 고가의 요트를 구입하기 위해 미국에 여행을 온 일이 있었다. 여행 자제 권고를 내린 장관의 남편이 여행을 가자, 국민들은 위로를 주지 못할 망정 분노만 가져준 정부라며 울분을 토했다. 본인들도 지키고 싶지 않은 주문을 국민에게만 강요했다는 비난을 받은 일은 이번 덴버 시장의 사태와 유사하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높은 사회적 신분에 요구되는 도덕의식의 사이에서 비롯된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천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국민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지도자의 역량이 절실한 만큼, 지금은 행복추구권에 앞서 더 강한 도덕의식이 요구되는 시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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