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이 출판 전부터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을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법원에 볼턴의 회고록 출판을 금지해 달라는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다. 볼턴은 이 저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서만 행동하고 있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비밀스런 거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이면 등을 공개하고 있다. 볼턴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늘 트럼프 대통령 옆에 붙어다니던 최측근 참모였다. 우리들의 기억속에는 흰 콧수염에 고집스러워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는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북한을 제압해야 한다는 북한에 대한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로, 지난 9월에 트럼프로부터 전격 경질되었다. 또 볼턴은 트럼프를 탄핵소추로 몰고 간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실무자로서, 탄핵심판을 담당한 상원에 증인으로 출석할 의향을 밝혀 트럼프와 공화당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증인 채택 여부를 가리는 투표에서 공화당이 이기면서 볼턴의 복수는 불발에 그쳤다. 그렇게 뉴스에서 사라진 볼턴은 회고록을 준비해왔다.


   알려진 사실대로 이 책의 주 내용은 트럼프에 대한 폭로이다. 여기에 한국과 북한의 이야기도 중추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평가절하성 발언이다. 실지로 볼턴의 회고록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북정상회담의 중재자를 자임했지만 미북 양측 어디에도 장단을 못 맞추는 '박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소리만 높이는 최강 '음치'였으며, 북한 김정은은 정권의 명운을 건 협상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협상 전략도 없는 '길치'처럼 적어 놓았다. 추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재선 승리를 위한 지원을 간청했다는 폭로도 담겨 있다. 이 내용은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트럼프는 이미 지난 선거에서도 러시아의 선거 개입으로 승리했다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에, 볼턴의 주장이 맞다면 올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로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정부에 불쾌감을 안겨주는 내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볼턴은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를 두고 '조현병 환자 같았다’라고 적었다. 당시 북한은 완전한 핵폐기가 아닌 영변 핵시설 폐기, 즉 일부 핵시설만을 폐기하고 미국에 경제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이른바 '주고받기'를 협상 카드로 꺼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이 같은 변화와 미국의 협상 전략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중국이 주장했던 비핵화와 경제 제재 완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협상 전략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내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볼턴의 설명이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태도를 두고 볼턴은 '조현병 환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망언적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또, 볼턴은 회고록에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미 3자회담 뒷얘기를 실었다. '판문점 회동'이 열린 지난해 6월 30일 당일 미국과 북한 모두가 문 대통령의 동행을 수 차례 거절했지만 문 대통령이 동행 입장을 계속 고수해 관철했다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이 그간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대통령들은 많았지만,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동행 주장을 꺾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문 대통령의 참여를 원치 않았는데 문 대통령이 우겨서 할 수 없이 같이 갔다는 말이다.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체면이 깎이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회고록에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는 정보를 트럼프에게 전달했고, 미국은 이를 믿고 미북정성회담을 열었지만, 문 대통령의 오락가락한 태도로 낭패를 봤다는 내용도 비친다. 다시말해 미북 외교는 트럼프의 즉흥적인 성격이 한국의 장단에 놀아났으며, 결국 별 소득없이 끝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 비핵화를 위한 접근은 조현병 환자 수준이며, 아무도 원하지 않던 판문점 회동에 억지로 끼어 들어 포토쇼만 잠깐 연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공개되자 한국 정부는 볼턴의 입장을 반대하며 미국 정부에 그의 책 출간에 대해 강한 반감을 전달한 상태다.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개인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시 국가간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한국 정부에 대한 공격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뒤, 대남 전단 살포 계획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노동신문을 통해 대남 전단의 일부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 얼굴 사진 위아래로‘다 잡수셨네. 북남합의서까지’라는 문구를 합성한 전단더미가 보이고 그 위에 담배꽁초와 담뱃재를 뿌려놓은 사진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국가간에도 지켜야하는 예의가 있다. 사실 북한의 남한 비방은 늘 해왔던 것이고, 최근 그 강도를 조금 높인 것이라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우방으로서 입장이 다르다. 트럼프 정부 이후 주한미군 방위비로 한국을 계속해서 괴롭혀온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최근까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지낸 사람이 국가안보와 관련해 중요하고 민감한 기밀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과 현재 진행중인 국가의 정책을 개인적인 시각으로 도마에 올린다는 것은 국가기밀누설에 해당된다. 국가간의 협상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밥 먹는 자리에서 성사될 리 없다. 어시장에서의 생선 가격 협상에도 물밑작업은 필요하다. 하물며 한 국가의 대통령에 대한 진심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얄팍한 시선으로 이를 싸잡아 비하한다면, 이는 분명한 외교 결례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흠잡히는 외교는 자제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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