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의 행복찾기

한 10여년 전이다.
 당시 서울에서 영어 강사를 하면서 자취생활을 했는데, 홍제동의 한 학원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역 내려가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토끼 몇 마리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앙증맞은 새끼 토끼가 너무 귀여워서 토끼장과 함께 덜컥 한 마리를 사고 말았다. 토끼를 데려와 자취방에 갖다 놨는데, 정말 보면 볼수록 귀엽기 짝이 없었다. 배추를 사서 주니 오물오물 정말 잘도 먹었다. 토끼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토끼장에 넣은 토끼가 답답한지 달캉달캉 소리를 내며 입으로 토끼장을 자꾸 흔들었다. 그래서 토끼를 꺼내서 방바닥에 놔주고 나는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뭔가 따끔따끔해서 눈을 떴다. 불을 켜보니 그 작은 토끼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어느새 침대 위에 올라와 내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자기랑 놀아달라고 보채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토끼가 사람을 물어뜯는 줄 몰랐다. 다시 토끼를 토끼장 안에 집어넣고 잠을 청했다. 다시 토끼가 달캉달캉 입으로 토끼장을 흔들었다. 시끄러워서 할 수 없이 토끼를 다시 토끼장에서 꺼내서 방바닥에 내려놨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토끼가 그새 올라와 또 내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래서 토끼를 또 토끼장에 집어넣었다. 토끼가 또 덜컹거리며 잠을 깨웠다. 토끼를 다시 방바닥에 꺼내놓자 어느새 올라와 나를 물어뜯으며 놀아달라고 보챘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내가 토끼장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토끼와 몇 번 실랑이를 하다 보니 창 밖으로 부옇게 동이 트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토끼와의 첫날밤은 하얗게 지나갔다.

  나중에는 토끼도 토끼장에서 자는데 익숙해지고 가끔 토끼를 내놓고 잘 때는 나도 토끼한테 물어뜯기면서 자는데 익숙해지게 되었는데, 몇 달이 지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토끼를 워낙 잘 먹이다 보니 토끼가 너무 빨리 자라버렸다. 내가 꽤 큰 토끼장을 샀는데도 불구하고, 그 토끼장이 거의 꽉 찰 만큼 토끼가 커버렸다. 그러다 보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똥오줌을 치우는 일도, 먹이를 주는 일도 점점 큰 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또 좁아진 토끼장에서 토끼가 받을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토끼를 들고 대구의 엄마 집으로 갔다. 대한민국의 대표 동물 혐오주의자인 엄마는 아파트에서 어떻게 토끼를 키우느냐고 기겁을 했다. 일단 베란다에 토끼를 풀어놓고 우리는 방법을 궁리했다. 당시 시골에 내려가 혼자 사시던 외할아버지의 시골집에 토끼를 키울 만한 빈 외양간인지 닭장이 있었다. 그래서 토끼를 그 곳에 보내기로 했다. 나는 토끼가 넓디넓은 시골집 마당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상상하고 진작 갖다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 후 가끔 엄마에게 토끼 소식을 물어봤는데, 엄마 대답은 늘 “잘 있겠지 뭐…” 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그 시골집을 팔았는데, 엄마는 그때 내게 토끼 소식을 전해주었다. 토끼를 외양간에 넣어놨는데, 토끼가 며칠 되지 않아 땅에 구멍을 뚫고 도망쳐버렸다는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손녀가 애지중지하던 토끼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면 손녀가 상심할까 봐 엄마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는 것이다.

  몇 달을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토끼를 키우는 경험을 한 후에 더 이상 지하철 계단에서 파는 토끼를 봐도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가끔 그 토끼가 생각나곤 한다. 천재 토끼를 만들고 싶어서 방바닥에 숫자판을 늘어놓고 숫자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날 물어뜯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재주가 없었던 우리 토끼. 지금은 저 하늘 어디에서 누구 손가락을 뜯고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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