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이 전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간 총리 또한 ‘동일본 전체가 박살 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지금 일본 열도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번에 들이닥친 대지진과 쓰나미 장면을 보면서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 지난 11일 일본은 대지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진이 잇따르고 있다. 말은 여진이지만 이 또한 강진에 버금가는 수치여서 피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후지산의 화산활동도 활발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진도 9.0의 거대 에너지 여파가 일본 열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상공에는 방사능 위험 가능성으로 공식 경보가 발령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에서 발생한 핵연료 누출 사고 단계를 넘어 원자로 폭발로 1만 명 가량의 사망자를 낸 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전 단계에까지 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핵 재앙을 막을‘최후 카드’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일본은 달랐다. 대재앙 앞에서 침착하게 대처하는 일본인들이 참으로 놀라웠다. 약탈과 범죄가 난무했던 아이티와는 확실히 달랐다. 집, 재산, 가족들을 모두 잃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울부짖거나, 당국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그들의 시민의식에 부러움과 함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본심이야 어쨌건 간에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타인에게 항상 예의를 갖추는 일본의 문화는 위기 때도 변함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일본 자위대도 사고 원전 처리를 위해 전면에 재등장했다.

 연일 계속되고 있는 지진 참사 보도를 접하면서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 또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감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은 삼가고 절제된 모습으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한국의 경우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희생자 가족의 울부짖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방영하고, 피해자들은 당국의 잘못된 대처를 성토하는 모습이 공식화되어 있다. 희생자와 그 가족의 적나라한 모습을 생생히 중계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조차 커다란 충격 속에 빠트리는 사례를 늘 보아 왔던 우리 눈에 비친 일본 언론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속담에‘어려운 일을 겪어 봐야 사람 속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국가의 위기대응 시스템이 무너져 어디 한군데 기댈 곳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 아래서도 침착하고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공공질서와 공중도덕에 대한 시민의식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다. 경제력이나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을 배려하는 국민들의 의식과 교양이 바로 그 나라의 수준을 짐작하게 해 준다. 대지진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차분히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성숙한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꼭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필자가 지진 피해 현장을 직접 가서 본 것은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때였다. 고베 지진 발생 1주 후 한국 대학생 스카우트 연맹 대원들 20여명을 이끌고 컵라면과 과자, 양말, 수건 등의 구호품을 챙겨 고베로 갔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것들이 있다. 기찻길 양 옆으로 나란히 서있었던 가옥들은 마치 큰 로봇의 발에 뭉개진 것처럼 힘없이 납작하게 주저 앉아 있었고, 고가 도로는 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처럼 비틀어져 있었고, 30층이 넘는 빌딩들은 어이없이 쓰러져 있었다. 시내 전 지역은 전화 불통, 개스 단전, 단수, 잠잘 곳도 마땅치 않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 때의 원정대는 필자가 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새우깡 한 봉지에 너무 감사해 하고, 라면 한 봉지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

 또한 이번 사태가 한일관계의 수준과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다행히 지금 한국은 일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100여 년을 돌이켜보면 일본은 한국에 고통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과 일본은 때로는 경쟁국가로, 때로는 공생하는 관계로 발전해가고 있다. 새로운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이 잘하는 것을 서로 찾아 칭찬하며 배우는 국민 의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역사나 독도 문제 등으로 일본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들도 이번만큼은 대범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한국이 통 큰 모습을 보여주면서 일본과의 신뢰를 깊이 하다 보면 상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는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필자도 오늘처럼 이렇게 일본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는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와 바로 잡지 못한 역사 속에서 헤매다 일본인은‘나쁜 민족’이라는 결과에 종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마음을 벗어 던지고 이 곳 콜로라도 동포들 또한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길 바란다.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도 다시 한번 파이팅 하길 기원한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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