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의 행복찾기

지금 미국에서 가장 격렬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책 한 권이 있다.
 예일대 법대 교수로 재직중인 중국계 미국인인 에이미 추아(49) 교수의 엄격한 자녀 교육 방식을 담은 ‘호랑이 엄마의 군가(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라는 저서이다.

 이 책에서 추아 교수는 역시 대학 교수이자 유태인계 미국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현재 14세, 18세의 두 딸을 철저히 동양 스타일로 교육시킨 경험담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추아 교수는 TV 시청이나 컴퓨터 게임, 학예회 참가, 방과후 활동, 밤샘 파티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학점은 A 이외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주입식 교육에,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쓰레기’라든지 ‘게으름뱅이’, ‘인형을 모두 불태워버리겠다’ 라는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주말이든 휴일이든 빠지지 않고 수 시간씩 해야 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습은 전세계 어디로 휴가를 가더라도 호텔 근처에서 피아노 연습실을 예약해놓아 꼭 연습을 하도록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엄마의 생일에 4살짜리 어린 딸이 손수 만들어 정성스럽게 쓴 생일 카드를 펼쳐 보고는, “정말 형편없이 만들었구나, 다시 만들어라.”라고 매정하게 말하며 다시 생일 카드를 되돌려주었다는 대목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추아 교수는 “내가 자녀를 키운 방식을 서술한 것일 뿐이며, 내 방식이 꼭 옳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자녀 학대에 가까운 그녀의 교육 방식은 서구 엄마들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그녀의 교육 방식을 보며 나도 조금 뜨끔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추아 교수만큼 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그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중국어를 배우는 차터 스쿨로, 둘째는 영재 학교에 보내며, 피아노와 수학 학원, 체스 클럽, 스펠링 비 클럽, 태권도, 중국 검도, 수영, 한국 학교까지 학교가 끝나면 주말을 포함해 아이들을 쳇바퀴 돌리듯 이 곳 저 곳으로 보낸다. 집에 오면 저녁을 굶기더라도 몇 페이지라도 숙제를 해야 잠을 재우고, 피아노 연습도 시킨다. 차 안에서는 무료하게 앉아있지 않도록 책을 읽게 하거나, 하다못해 구구단이라도 외게 만든다. 아이들이 너무 오랜 시간 장난감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멀쩡히 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하나 둘 다 팔아 치우거나 자선 단체에 기부해버렸다. 어떨 때는 아이들 보는 앞에서 쓰레기 봉투에 모두 쓸어 넣어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리기도 했다. 장난감이 사라지자 둘째는 돌멩이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신기해 보이는 돌멩이를 모아 현관문 앞에 상당한 크기의 돌멩이 더미가 생겼다. 둘째가 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나는 둘째를 이끌고 자연과학사 박물관의 젬과 미네랄 관에 가서 보석과 돌에 대해 보여주고 돌에 관한 책을 사주며 스스로 알아보게 만들었다. 이제 둘째는 돌에 관심이 없다. 한때 반짝하던 둘째의 돌 사랑의 증거는 현관문 앞에 아직도 소복이 쌓여있는 돌멩이 더미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아이는 엄연한 하나의 인격체이지 부모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내가 꼭 추아 교수의 교육법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무조건적인 칭찬보다는 이 험하고 냉정한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길러줘야 한다는 것, 일시적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자라난 아이들이 나중에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더 큰 상실감과 상처를 받고 좌절하기 쉽다는 것에는 크게 공감한다. 어렸을 때 많은 자유와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지만, 그 아이들은 커서 더 많은 자유와 선택권을 누릴 수 있다는 말도 공감한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 말을 잘 듣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숙제 한 장 하는데 열 바가지의 눈물을 쏟으며 버티다 1시간이 걸리는 날도 허다하다. 한동안 장난감이 없었던 우리 집 거실은 하나 둘 어디선가 생긴 장난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추아 교수의 딸들도 꼭두각시처럼 엄마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루 3시간의 바이올린 연습을 하기 싫다고 모스크바의 한 레스토랑에서 유리컵을 바닥에 내던지며 반항한 딸 룰루는 이제 하루에 15분씩만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그리고 룰루는 밤샘 파티를 금지한 엄마의 의지를 꺾고 최근 14살 생일 파티를 친구들을 초대한 슬립 오버 파티로 열었다고 한다. 나도 항상 우리 애들한테 진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꿈꾼다. 기왕 아이를 키울 바에는 그 방법이 호랑이 엄마식 교육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키워보겠다고. 하루 해가 밝는다. 오늘도 속으로 되뇌어본다. 이 방법이 최선입니까?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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