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에서 열 받게 하는 말 한마디

내가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라디오 진행자가 주제를 던져주면 청취자들이 전화를 해 그 주제에 맞춰 진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재미있는 주제들이 많아서 애들 학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자주 듣는다. (애들하고 들을 만한 내용은 아니다)

한번은“부부 싸움을 하다 나를 열 받게 하는 말 한마디”라는 주제로 청취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아직 안 끝났냐(Are you done yet)?”,“너 미쳤냐(Are you out of your mind)?”,“도대체 너 뭐가 문제야(What’s your problem)?”,“닥쳐(Shut up)” 등 부부 싸움에서 자신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도 남편과 종종 싸운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참 사이좋게 잘 지냈는데, 살다 보니 나의 본색을 드러내 성질도 부리게 되고, 그렇게 서로 싸우다가 또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우리도 다른 평범한 부부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나를 화나게 하는 남편의 말을 생각해보게 됐다. 라디오 청취자들이 무수히 쏟아내는 열 받는 말들을 나도 남편도 한번씩은 다 써본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쓰는 말 중 안 나온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영어로 말해(Speak English).”였다.
 남편이 미국인이지만, 나도 영어를 꽤 하다 보니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으며 문화차이를 느낄 일은 없었다. 그런데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열 받아서 버벅거리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러면 남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어로 말해보라고 약을 올린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열을 받기는커녕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 한마디로 열을 받게 하는 말이 아니라, 열을 식히는 말인 셈이다. 

 부부는 님에서 점 하나만 더 붙이면 남이 된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무촌이다. 한마디로 도장찍고(혹은 싸인하고) 돌아서면 남남이 되어버린다. 한때 죽고 못 살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결혼했다가 마음 안 맞으면 갈라서버리면 그만이다. 자식이나 부모와는 달리, 부부는 공식적으로 연을 끊을 수 있는, 한마디로 살얼음판 위에서 추는 탱고와도 같은 것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 갈등이 안 생길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갈등을 풀지 않고 그냥 쌓아두면 언젠가 폭발하게 된다. 따라서, 갈등이 누적되지 않도록 잘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 싸움은 서로에게 섭섭했던 마음을 표출해 갈등을 풀어주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잘” 해야 한다.

 그럼‘칼로 물베기’라는 이 부부 싸움을 어떻게 싸워야 “잘”싸우는 것일까? 아쉽게도 그에 대한 답은 나도 찾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는 생각해봤다. 사랑도 좋고 존경도 좋다. 그런데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해’라고 생각한다. 입장을 바꿔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싸움이 애초에 날 일도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보니 종종 서로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기만을 바라지,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싸움이 생기고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다.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부부 상담사가 부부 싸움을 할 때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후에 “그랬구나. 당신이 그래서 속이 상했구나.”하라고 강연하는 것을 들었다. 참 공감이 갔다. 그래서 나도 이제 남편이 나한테 영어로 말을 하라고 쏘아붙인다면, 이렇게 말을 할 생각이다.

 “그랬구나. 네가 나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속이 상했구나. 그럼 다시 말을 해줘야겠구나. 또박또박. 문법 맞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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