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집요하게 나를 사로잡는 상념이 있다. 혼자서 운전을 하거나, 심지어 가족들이 다함께 탄 차를 운전할 때도 혼자서 깊숙히 그 상념에 빠져들기 쉽상이다. 나는 주로 그 상념에 빠지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때로는 그로 인하여 피곤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 상념은 바로 외국어 교육에 대하여 이제까지 내가 책이나 기타 매체를 통하여 주장한 이론들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에 관한 것과 아직도 내가 모르고 있을 그 무엇에 대한 막연한 혜아림이다. 그와 같은 상념 속에서 그 동안 내가 주장한 이론과 실제에 대한 허구는 없는지,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하루에도 여러번씩 반복하는 것이다. 또한 그 상념에 묻혀서 외국어 교육 및 습득의 현상과 관련하여 내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현상의 가능성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BTM을 최고의 대안으로 확신할 수 있는지 스스로 반문해본다.

깊고 깊숙한 상념에서 깨어나면서 아직까지 나의 BTM 교습법이 객관적인 가치의 기준이 아닌 주관적인 아집이나, 고집, 착각 또는 허영심으로 왜곡된 것이 없다, 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개운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느끼는 그 자체가 착각이며 본질을 똑바로 보지못하는 주관적인 왜곡에 깊이 빠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내것을 버리고 옳은 것을 진정으로 수용하리라, 항상 다짐한다. 내가 BTM을 주장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일상적이며 자발적인 상념속의 객관적 검증을 지향하는 나 자신의 양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한다.

BTM 외국어 교습법을 개발한 창시자로서 주변에서 영어공부에 매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때면 안타까뭉이 앞선다. 1년씩 어학연수를 와있는 대학생들을 볼때나, 방학동안의 틈을 이용하여 영어를 배워보겠다고 잠시 미국의 친적집을 다녀가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의 영어교육정책을 보면서도 그렇고, 각종 대표적인 영어시험 준비를 위하여 불철주야를 가리지않는 학생들을 생각해도 그렇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방향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러한 방법들로 인하여 유창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 바로 내가 지향하는 객관적인 검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얼마전에 만났던 한 분의 영어공부 이야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분은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되지 않는 독자라고 하셨다. 나의 글을 매번 읽는다고 하셨다. 은퇴를 하시어 딱히 할일도 없고, 시민권을 따기 위한 목적과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하여 영어공부를 나름 아주 열심히 하시는 분이다. 오성식 생활영어를 갖고 공원에 가서 매일 한 두 시간씩 큰소리로 말하면서 암기하며,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꾸준하에 영어에 정신을 매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익힌 말을 드디어 실험적으로 써먹어 봤지만 결국 상대방이 알아들지 못하더라,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 실망감이 팽배하고 영어공부에 대한 의욕도 떨어진다고 하셨다.

그 분의 경우 미국인과의 영어대화를 실패한 분명한 이유는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짧은 한 마디라도 성공적으로 대화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어의 기초는 말하기라는 것과 말하기부터 배우기 시작해야 된다고 이해하신 것은 좋았는데 그 방법은 잘 못 된것이었다. 그러니 방향설정은 제대로 하셨지만 그 구체적인 샐행에서 발생된 상당한 착오로 그동안의 애쓴 노력이 빝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기 위주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은 맞지만, 내 멋대로의 소리를 갖고 말하기 위주의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잘못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누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내가 볼때 영어공부에서 1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어의 소리를 입으로 정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디오를 이용하여 실용적인 표현들을 열심히 반복하여 들어주면서 그 소리에 최대한 가깝도록 반복하여 입으로 되풀이 (옹알이)를 해주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소한 700여개의 실용적인 표현들을 언제든지 원어민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창하게 뱉어낼 수 있을만큼만 영어공부를 한다면 누구든지 반드시 성공한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휘실력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어위력만 갖추면 세상에 영어로 못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방향설정을 잘했다 해도 삐뚤어진 소리와 방법으로 하는 영어공부는 도움이 될 수 없다. 헛고생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공부의 고생도 고생다운 고생을 해야 영어가 될 수 있다. 헛고생으로 얻어지는 것은 실망과 낙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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