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목사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즐거운 축제의 성탄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다. 회상해 보면 어린 시절에 보냈던 성탄절은 기대와 흥분 그 자체였다. 그런데 요새는 왠지 옛날과 같은 감흥이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오래 전 성탄절은 감격과 환희의 날이었다. 이 날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건 교회와 거리가 먼 사람이건 일년 중 가정 즐겁고 신나는 날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이들에게 즐거운 성탄절(Merry Christmas)이었다.

  성탄절이 되면 가장 흥분하는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연극을 준비했다. 누가 마리아와 요셉역을 맡을 것인가, 동방박사, 목자, 천사들, 그리고 헤롯왕의 역할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가 관심사였다. 옛 유대인의 복장을 하고, 분장을 하고 연극대사를 외우며 한없이 진지했다. 또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직접 색종이, 금종이, 은종이를 오려 붙이고, 흰 솜을 붙이고, 성탄을 축하하는 글귀를 오려 붙였다. 아이들 청년들 할 것 없이 모두가 오래 전부터 성가연습을 하며 성탄절의 특별찬양을 준비했다.

  성탄절 새벽에는 성가대가 집집마다 찾아가 새벽송을 돌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크리스마스 케롤들은 그 자체가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천사들의 노래였다. 추운 줄도 모르고 하얀 입김과 함께 부른 노래를 또 부르고 또 불러도 지겹지 않았고 마먕 즐겁고 기쁘기만 했던, 새벽송 돌던 그 날이 그립다. 성가대의 방문을 받은 교우들은 대문을 활짝 열고 반갑게 맞아 들여 생강차도 끊여주고 호빵도 내어주고 센베 과자도 내어 주었다. 새벽송이 끝나고 교회로 돌아올 무렵이면 성도 가정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가득 든 부대자루를 낑낑거리며 들고 돌아와야 했다. 밤새도록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교인들 집을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다음 날 꼭 시험든 교인이 생겨났다. 생벽송 팀 맞으려고 밤새 선물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왜 다른 집은 가고 우리 집은 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붙들고 달래느라 진땀 빼시던 성가대 대장 집사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밤새 온 동내를 해집고 다니느라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새벽녘에 교회에 돌아와 빈방 여기저기에 엎어져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만 성탄절 새벽예배를 빼먹게 되어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야단맞았던 기억들....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은 교인들만이 아니었다. ‘땡그렁 땡그렁’ 구세군의 자선남비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성탄절의 축제는 기독교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거리마다 동네 전파사마다 징글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펫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케롤이 흘러 나왔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성탄절은 서로 서로 선물과 카드를 교환하는 거의 유일한 날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친구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밤을 새워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리고 만들었다. 흰 눈이 덮힌 들판과 산, 초록빛 혹은 눈덮힌 소나무, 눈덮힌 시골 마을과 뽀족탑이 있는 교회당과 같은 것들이었다. 아니면 동방박사나 목자들의 모습을 정성스럽게 그렸다. 카드에 그려진 이러한 정경들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정겨운 것들이었다. 한국의 60년대, 70년대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1월 1일 제야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날이 바로 성탄절 전야였다. 모처럼 통금에서 벗어나 밤새워 명동거리 종로거리를 쏘다니며 억눌렸던 시대의 억압을 풀던 밤이 바로 그날이기도 했다.

  이런 성탄절에 대한 아스라한 감흥과 기억들이 사라진지 오래다. 과거에 성탄절에만 볼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화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수시로 선물과 카드를 주고받는다. 이제는 성탄절 전야의 통행금지 해제도 의미가 없어졌다. 통금 자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새벽송도 사라졌다. 복잡한 도시 공간속에서 새벽의 합창은 소음으로 취급되어 시비거리가 되기 일쑤다. 성탄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도 이제는 신이 안 난다. 그때는 색종이, 금종이, 은종이 사다 오리고 붙이고 매달고 했는데 이제는 가짜 나무에 걸 장식들이 정교하고 하려하고 다양하게 제품화되어 있어서 사다가 걸기만 하면 된다.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정성이 없는 성탄장식이 되고 말았다.

  시대가 변했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오신 날, 그리하여 인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세상에 오신 날, 이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는 그리고 이 소식에 감격하는 모든 이들에 의해 한바탕 잔치가 열릴 수 있는 성탄절이 다시한번 찾아왔으면 좋겠다. 상업회되고 세속화된 마음도 걷어내고, 너무 야박해져 버린 이기적인 삶의 겉옷도 벗어버리고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리고 이웃에게로 성탄의 기쁨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그 옛날 성탄절의 추억들을 떠 올리며 차가워진 가슴을 훈훈하게 수 있는 것처럼 먼 훗날 또 다시 오늘의 성탄절을 추억하며 가슴 따뜻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