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다 보면 한반도가 얼마나 작은 땅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콜로라도주 보다 작으니 작긴 참 작다. 하지만 한반도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 우리의 태극전사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저력이라는 표현 보다는 ‘괴력’이라고 표현이 더 알맞지 않나 싶을 정도다. 우리는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해낸다는 일당백 (一當百)이 아니라 일당 천의 역할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고구려의 대 중국 전쟁하면 떠오르는 것이 살수대첩이다. 수 나라의 대군이 고구려를 공격했다가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에게 크게 격파 당한 이 전투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수 양제가 이끄는 113만 명의 수륙군은 고구려로 쳐들어와 국경지대 부근에 있는 요동성을 위협했고, 우중문이 이끄는 별동대 30만 명은 평양성으로 진격해왔다. 이때 을지문덕이 우중문을 희롱한 5언시를 보내고 거짓으로 영양왕 조회를 약속하자 수 나라군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고구려 군은 곧 추격전을 벌였고, 수 나라군이 살수를 건널 때 맹공을 가했다. 그 결과 압록강을 건너 요동에 도착한 수 나라군의 수는 2,700명에 불과했다. 수 나라는 이런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613, 614년 다시 고구려를 침략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람 수로 밀어붙이는 중국의 인해전술은 ‘일당 천’을 해내는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생각해봐도 우리의 신화는 계속된다. 선조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순신이 삼도수군 통제사로 다시 임명되기 전, 원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은 이미 대패했고 쓸만한 함선은 12척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에 일반 백성들이 나중에 가져온 한 척이 더해져서 13척이 되었다. 이때 일본 수군의 전선은 133척이었다. 일본 수군은 목포 쪽으로 흐르는 북서류를 타고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전라도로 서진할 계획이었다. 울돌목은 진도와 화원 반도 사이에 있는 좁은 수로로 조류는 국내의 수로 중에서 가장 빠른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물살이 빠른 이 울돌목으로 유인했던 것이 대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달랑 13척으로 말이다. 진도 앞바다의 물길을 간파한 이순신의 지략은 후세에도 일당백을 비유하는 좋은 예로 자리잡았다.

이번 주 토요일에 끝나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태극전사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오늘 화요일 현재, 메달집계상황은 대한민국은 금메달 66개 은메달 56개 동메달 74개 총 197개의 메달을 획득해 2위이다. 중국은 165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종합순위 1위, 일본은 34개 금메달로 대한민국에 이어 3위다. 중국의 1위 자리는 예정된 것이었다. 이번 대회 자원봉사자만 해도 총 59만 명, 대한민국 육군 56만 명보다도 많다. 인구수로 밀리는 게임이긴 하다. 그래서 인구비례로 본다면 한국이 단연 1위가 아닐까.  한국 인구 5천만, 중국 인구 13억, 한국인구의 26배가 넘는다. 그렇다면 한국이 획득한 메달의 26배를 중국이 따야 진정한 1위라는 진담 섞인 농담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세계 인구의 1/4이 중국인이다. 그래서 인해전술만이 살길일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도 한국을 만나면 달라진다. 한국은 수영, 유도, 펜싱, 야구 등 대부분의 종목에서 빛을 발했다. 중국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금메달을 거머쥔 양궁도 그랬다.

그 중 사격 종목은 특히 가슴에 와 닿는다. 한국 사격은 이번 대회에서16개 세부종목 가운데 무려 8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나머지 8개를 가져간 것은 개최국 중국이었지만 사실 중국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이다. 중국은 초반 사격에서 메달을 싹쓸이 하면서 일찌감치 메달 레이스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에 차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홈 그라운드라는 이점도 전혀 살리지 못한 채 번번이 한국에 무릎을 꿇고 은메달에 그쳤기 때문이다. 중국 취재진들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사격의 선전 이유를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중국 취재진의 기대와 달리 한국 선수들의 대답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린 평소 실력대로 했다는 말이다. 한국의 성인 사격 선수가 총 200여 명 정도에 불과하고 화약 총의 경우에는 20명을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중국의 경우 최소 1만 명 이상의 사격 선수가 있다는 점과 너무 대조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속사권총의 경우에는 단 6명의 선수 중 4명의 대표를 뽑아서 갔다. 이런 한국의 사격 현실을 아는 중국 관계자들은 한국의 선전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는 종목마다 중국에 유리한 편파판정이 이어지면서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끊이지 않는다. 한 스포츠 해설위원은 “중국의 전국 체전에 우리가 게스트로 초대받아 온 느낌이 든다.”고까지 말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선 사격에서 첫 금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중국은 자국 전통 무술인 우슈 결승전을 대회 첫날 오전 8시 35분이라는 비상식적인 시간에 개최해 기어이 자국 선수가 대회 첫 금메달을 차지하도록 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태극전사들이 일당 백, 아니 일당 천의 역할을 해 준 것에 박수를 보낸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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