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전 회장이 지난 3월 12일 마스크 300만 장을 한국, 일본, 이란에 기부했다. 특히 한국에는 100만 장의 마스크와 ‘산수지린 풍우상제(山水之隣 風雨相)’라는 메세지를 함께 보냈다. 가까운 이웃끼리 도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다는 뜻이다. 마윈과 알리바바의 기부행렬은 마스크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중국정부 연구기관에 백신개발 기금을 기부했으며, 알리바바의 인터넷 전문 은행인 ‘마이뱅크’에서는 대금 결제 날짜를 미뤄주고, 대출이자도 대폭 낮추면서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을 아낌없이 퍼붓고 있다.

     이‘알리바바’는  매일 1억 명이 물건을 구매한다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서, IT 업체의 최강자인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이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은 중국 최고의 부호다. 비록 한국인은 아니지만, 세계의 유수한 기업인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그를 존경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중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부른다. 이런 마윈이 알리바바를 거대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지금, 그가 재조명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마윈과 알리바바는 2003년에 창궐했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국민들로부터 날선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미움은 사스가 진정된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2003년 4월 마지막 날, 알리바바가 입주해있던 중국 항저우 화싱커지 빌딩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5백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본인들의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 서류 뭉치들을 챙겨서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 건물에 입주해있던 다른 입주회사들의 직원들도 한가득 짐을 안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알리바바 직원들과 다른 회사 직원들을 구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알리바바 직원들의 얼굴에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죄책감이 가득했고, 다른 회사 직원들의 얼굴에는 알리바바를 향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2003년 4월은 중국에서 사스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고, 중국정부는 ‘광저우’를 사스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지목하고 사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때였다. 다른 지역들은 어떻게든 사스 바이러스가 자기네 지역으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알리바바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사스 확진 판결을 받자 건물을 폐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항저우 시민들이 마윈과 알리바바에 대해 보이는 적대감은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했다. 시민들이 마윈과 알리바바를 사스 바이러스를 퍼뜨린 주범으로 여기며 분노를 터뜨린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광저우 박람회에 직원을 참가시켜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윈과 알리바바가 자기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다 전염병을 항저우로 불러들인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알리바바가 그 위험한 곳에 꼭 가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스와의 전쟁이 벌어지던 광저우로 직원들을 보낸 건 <중국공급상>이라는 알리바바의 수출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당시 연회비가 천만원에 달했던 중국공급상 서비스의 고객들은 대부분 해외수출을 원하는 중소기업들이었고, 광저우 박람회는 중국 연간 총수출액의 3분의 1을 연결해줄 수 있는 큰 박람회였다. 이렇게 큰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다면 알리바바에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 마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악몽으로 돌아왔다. 그의 지시에 따라 박람회에 참석했던 직원이 사스에 걸리면서 마윈과 알리바바는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다 항저우에 사스를 끌어들인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곧바로 모든 직원들은 격리 조치되었다.

      하지만 당시 마윈은 빌딩 폐쇄를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 모두가 집에서도 인터넷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전화국에 미리 연락을 해 두었고, 전 직원의 집에 광대역 고속 인터넷 통신을 설치했는가 하면,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위해 발신 전환 서비스도 재빨리 신청했다. 덕분에 바이어들에 대한 서비스를 빠짐없이 챙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중국의 인터넷 통신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대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분명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직원이 격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차질이 없었던 것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다음 단계를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사스를 겪었던 마윈은 지난주 중남미 24개국, 동남아 4개국, 아프리카 54개국 등에 마스크와 진단키트, 의료용 방호복, 산소호흡기 등을 기부했다. 한때 사스를 항저우에 퍼뜨린 주범으로 거센 원망을 받았던 그들은 이제는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국가들을 돕는 세계적 기업의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참석했던 박람회로 인해 고객들은 마윈과 알리바바를 더욱 굳건히 믿게 되었고, 마윈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이또한 기회로 만들었다. 알리바바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닷컴에서 업체들이 인터넷 생방송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로 자가격리와 재택근무가 늘어나자 사람들은 음식과 각종 생활용품은 물론, 자동차, 심지어 부동산까지 온라인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즉, 알리바바는 소비자 패턴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 마윈은 지난주 전세계 의료진이 중국 코로나 치료 경험을 가진 의료진과 온라인에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알리바바 클라우드에 개통해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알리바바의 미래 핵심사업인 클라우드를 띄우기 위한 마케팅이라고 폄하할 수 있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역량으로 재난상황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코로나와 같은 재난은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다시 올 수 있다. 그때마다 주저 앉을 수는 없다. 재난 상황에서도 직책을 완수하고자 했던 알리바바를 보면서 “지금 우리는 우리의 직책을 완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마윈의 생활철학인 ‘두려움을 떨쳐버리라’는 말이 오늘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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