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만 해도 한국발 여행객에 대해 입국을 제한한 나라가 25개국 정도였지만 지금은 1백여개국에 달한다.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기세이다. 미국 또한 한국인에 대한 입국 제재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부터 한국발 미국행 전 노선의 승객을 대상으로 출발 전과 도착 후에 발열검사를 실시한다. 탑승구 앞에서 열화상 카메라와 휴대용 체온계를 이용해 검사를 하고, 유증상자일 경우 입국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더욱이 미 행정부가 대구에 여행금지 경보를 발령한 지 하루 만에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해 이중검사까지 하기로 하면서, 입국 제한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현실을 딱히 ‘우려’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정부차원에서 막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미국에 산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우리는 늘 소수민족의 비애를 안고 살고 있다. 한국식당에서 음식이 잘못 나오거나 늦게 나오면 인상을 찌푸리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레스토랑에서는 주문한 지 1시간이 지나도, 빵이 시커멓게 타서 나와도 그러려니 하면서 조용히 먹고 나온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아무런 과실이 없어서 자신있게 경찰을 불렀지만, 상대방이 영어 잘하는 미국 사람이면 괜시리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외국인 딜러에게 자동차를 구입하게 되면 웬지 모르게 바가지를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을 때, 무뚝뚝한 어투로 약 복용법을 설명하고 있는 약사를 만날 때면, 미국인이 아니어서 이런 대접을 받구나 하는 생각도 내심 한 적이 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이민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이 열등감은 우리의 이민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버텨왔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발발하면서 우리의 위치는 더욱 위축되어 보인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중국과 일본은 쏙 빼놓고, 한국과 이란, 이탈리아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본거지인양 매일매일 떠들고 있다. 중국은 자신들이 바이러스의 근원지임을 잊은 채 한국정부를 향해 관리 잘하라며 적반하장이다. 미국의 뉴스 방송은 하루에도 몇번씩 확진자가 넘쳐나는 사우스 코리아를 보도하고 있다. 사실은 한국에서 확진자 수가 저렇게 넘쳐나는 이유는 발 빠르게 검사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때문인데, 이러한 속 사정을 세계가 알아줄 리 없다.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확진자 소식에 한국은 마치 바이러스의 소굴처럼 인식되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 곳에 사는 우리 한인들의 행동에도 제동이 걸린다. 일반 마스크의 품절로 인해 공사할 때 쓰는 마스크라도 구해볼 요량으로 홈디폿을 찾았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알아보고 ‘No Mask’라고 먼저 알려주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 장 보러 가는 것도 편하지 않다. 한 지인은 며칠 전  코스코를 갔는데 괜시리 주변의 눈치가 보여 살 것도 제대로 못 사고 서둘러 나왔다고 했다.  킹수퍼에서 평소대로 일주일 치 먹거리를 쇼핑카트에 채웠는데, 음식 사재기로 오해를 받을까봐 지레 행동이 움츠려졌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자주가는 스테이크 하우스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 급증 이후 갑자기 주변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필자도 지난 5년동안 꾸준히 나가던 요가 교실을 당분간 쉬기로 했다. 좁은 공간에서 해야하는 운동인데다, 클래스 내내 아시안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출시 마스크를 쓰고도 싶지만, 오히려 병이 있다는 오해를 받을까 사놓은 마스크를 정작 착용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주 금요일 콜로라도 내 각 학군들은 학부모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 이메일을 일제히 전달했다. 읽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안그래도 둘째 아들이 얼마 전에 백인 아이들이 아시안 아이들에게 “너 코로나 바이러스 있는 거 아니냐”며 놀리는 소리를 학교에서 들었다고 했다. 깊이 내재되어 있던 그 열등감이 아이들에게 대물림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최대한 확산을 막는 일 밖에 없다. 현재 미국에도 확진자가 1백여 명이 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까지 한인에 의한 확진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이지, 한인에 의한 감염자가 없을 리 없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 언론들은 득달같이 미국까지 감염시킨 한국이라는 타이틀로 도배를 할 것이 뻔하다. 국격은 땅에 떨어지고, 우리들도, 우리의 아이들도 미국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 민망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흉흉한 루머가 돌고 있다. 아는 사람이 확진자다, 어느 식당에 발열환자 왔다갔다, 어느 빌딩이 폐쇄되었다, 덴버에 신천지교인이 있다, 대구를 다녀온 전도사가 덴버 교회를 방문했다는 등 별의별 루머가 돌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 한국을 방문했던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짢아 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의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의심한다는 생각에 기분나빠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다 결국 감정 문제로 발전된다.
 
    사태가 악화될수록 말부터 조심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의심하는 분위기가 기분 나쁘다고 내뱉는 막말도 자제해야 한다. 더불어 서로 간의 접촉을 피하고, 스스로 조심하고, 발고하는 시민의식도 갖추어야 할 때이다. 한국=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콜로라도 한인사회라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난 민족임을  다시한번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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