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예배의 신학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지만 예배의 중심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데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서 예배자들이 기쁨을 얻는 것이지,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얻기 위한 예배는 근본적으로 예배의 중심이 잘못되어 있는 예배가 되어지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in the presence of God) 예배여야 한다. 예배 가운데 영으로 임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임재를 성도들이 경험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그 예배는 목표(goal)에 도달한 예배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살아있는 예배 회복된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임재 속에 체험하며,  위로와 손길을 체험은 물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떨림을 경험하고,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받고, 기쁨과 감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사야가 그랬고, 모세가 그랬으며, 에스겔이 그랬고, 하박국이 그랬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며,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배자들은 성령님을 깊이 의뢰해야 하며, 온 중심이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가능해지는 일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진종일 걸어가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누가복음에 보면 저들의 영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해준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앞에 서있고, 아니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면서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듣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지 못했다. 저들 앞에 말씀 성찬이 베풀어지고, 일상의 식탁을 바꾸어서 성만찬이 되게 하시는 은혜의 성찬 앞에 서지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사실이 되고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성찬을 받고서야 그들의 눈을 열려지고,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예배 자들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예배의 목표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 되도록 하나님의 역사 앞에 민감하며, 영의 눈을 열어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배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를 가르쳐주시는데, “네 마음을 다하고 (with all your heart),, 목숨을 다하고 (with all your soul), 뜻을 다하고 (with all your mind), 힘을 다하여 (with all your strength)”라고 가르쳐 주신다(막 12:30). 여기에서 주님은 마음 전부, 목숨 전부, 뜻 전부, 힘 전부를 요구하신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존재이다. 최고의 정성과 최고의 노력을 요구하신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이러한 전존재를 드리는 자세가 경주되어 그분을 섬기는 자세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순서, 순서에 예배자들이 이러한 자세를 갖도록 함은 예배 회복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성신전원교회 김교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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