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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가장 어려운 화두
2020년 02월 06일 (목) 08:21:09 weeklyfocus weeklyfocus@focuscolorado.net
     벌써 2월의 입춘(立春)이 왔지만, 쉽게 벗어버릴 수 없는 지난해의 무게에 눌려 스쳐 가는 새해의 숨결도 모른 채 살다가 중국에서 달려온 코로나바이러스의 위기와 54회 슈퍼볼의 열기로 겨우 깨어난 느낌이다. 중국만 의지하고 사는 우리 북한 동포는 어떻게 하나? 벽에 걸린 새해의 달력에 담겨있는 일 년의 여백이 조금은 느긋하더니 그 행복은 매우 짧다. 수많은 새해를 맞고 보낸 나로서는 다가오는 미래의 속도 때문에 그 여백이 결코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과, 이 여백도 결국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로 채워질 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토로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전 1:9-10)

     모든 미디어마다 앞 다투어 보여주는 미래의 그림들 때문에 흡사 시간이 미래로부터 현재로 역류해오는 듯하다.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역류사이에서 잠시 뜨락을 넓혀본다. 새해는 어떤 의미로 살아야 하나? 2020년 한 해의 정점에서는 무엇을 했다 할 수 있을까? 지난해 본 영화 ‘기생충’(Parasitic)에서 송강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계획하지 마,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안되면 자책하게 되거든, 그러니까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니까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살아야 돼”했으면 더 맞는 말이 될 뻔했다. ‘너희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전 7:16-18)

     우리는 자꾸 신앙에 울타리를 친다. 내 눈에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을 사수하려고 선을 긋고 고집한다. 마치 그곳만이 복된 땅이라도 되는 듯 강요하고 세뇌시키며 자신의 조막막한 정신적 테두리로 지키려 한다. 그러다가 정형화된 생각에 갇힌다. 이런 조직이 병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바리새적 종교주의자가 되어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믿으며 강요하는 무지한 공간에 예수님은 없다. 실망만 가득하다. 좁은 신앙은 그 가운데 있는‘선(善)’조차 병들게 한다. 다른 이와의 만남, 다른 공동체와의 교제, 다른 경험, 다른 확신과의 만남이 바로 광대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지경을 넓혀 자기를 넘어섰을 때, 우리는 그곳에서 참 진리를 발견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오래전 한 유명한 동양학 강사(김용옥이던가?)가 ‘예수는 사생아’라는 말을 했다가 교회의 분노를 산적이 있다. 사실 세속적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이‘사생아’이시므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정을 타고났다면 하나님이실 수 있을까?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가 방 한 칸 차지하지 못하고 마구간에서 낳을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신비가 나는 너무 좋다. 그 높으신 분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낮은 곳을 택해 이 지상으로 내려와 이번에는 허접한 제자들과 몰려다니시다가(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도둑들과 함께 사형대상자로 십자가에 달리신다. 심지어 옆에서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엄살을 부리지 않는데, 십자가 하나도 제대로지지 못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 울부짖는다. 이렇게 비천하고 나약한 젊은이가 인류를 구원하고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얼마나 피상적인 종교였을까?

     예수님은 분노를 억제하지도 두려움을 감추려 하지도 않으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리신 것도 그러했지만 나는 왜 예수님이 ‘돌멩이 하나 던지만 닿을만한 거리’(눅 22:41)에 구태여 제자들을 앉혀 놓으셨는지 궁금했다. 그 통곡이 다 들릴만한 거리에... 결국 예수님은 자신이 그저 보통의 나약한 인간임을 감추지 않으셨던 거다. 게다가 예수님은 실패한 혁명가? -가수 조영남은 오래전 ‘예수 삿바를 잡다’라는 책에서 예수님을 체 게바라만도 못한 혁명가라고 썼다- 처형 장소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동지들이 다 도망가 버리는 참으로 인복 없는 양반이셨다. (몰락한 이후에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을 데리고 골프장에 몰려다니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는 얼마나 비교되는가)

     게다가 반장 역할을 하고도 대표해서 예수를 배반한, 그것도 스승이 가장 어렵고 외로울 때 배반한 후 다른 동지들에게 면목이 없어 하는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묻는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 내가 베드로였다면 ‘주님 차라리 저를 때려주십시요’했을 텐데, 예수님도 가뜩이나 주눅 든 베드로에게 ‘괜찮다. 너도 무서웠지? 이제 내가 부활했으니 됐다, 지난 일은 남자답게 털어버리자. 우리가 남이가? 소위 싸나이답게 그렇게 말씀하셔도 됐을텐데... 다만 예수님은‘내 양을 먹이라’ 세 번 말씀하시고 그것으로 끝이셨다. 나는 예수님의 이런 함축적인 사랑을 도저히 따라할 수 없다. 길에서 만난 홈리스에게 지폐하나 건네주는 것도 아닌, 인류의 구원을 생각하는 거대한 프로젝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는 계명이 새해에 내게 가장 풀기 어려운 화두이다. 그대들이 새해를 사는 의미는 무엇인가? 혹 무계획이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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