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야구, MLB는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만큼 수많은 레전드 선수들이 활약했다. 그 중 재키 로빈슨의 등 번호 42번은 메이저리그 최초로 전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특정 팀이 아니라 전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경우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런 특급대우를 받은 로빈슨은 사실 그다지 특출한 선수는 아니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타자이긴 했지만 모든 구단에서 그의 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정도의 선수는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왜 그의 등 번호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것일까. 바로 미국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였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기 전까지 흑인들은 노예로 거래되었다. 그렇게 흑인들이 차별받던 1947년에 로빈슨은 LA 다저스의 2번 타자로 출전했다. 흑인 야구 선수로서는 최초였다. 그러나 그의 MLB 생활은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한달 내내 몸에 공을 맞았고, 안타를 치고 1루로 가면 상대 1루수가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이러던 중 피 위 리즈라는 백인 동료 선수가 힘이 되어 주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은퇴 이후에도 사업을 하면서 흑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인권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미국 인종 차별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53세라는 젊은 나이에 타계했고, 2009년 전 구단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였던 그를 기리기 위해 등 번호 42번을 모든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영구 결번의 주인공이 된 인물은 1930년대 뉴욕 양키스의 타선을 이끌었던 루 게릭이다. 선수 시절의 게릭은‘철마(The Iron Horse)’라는 별명에 걸맞게 2,130 경기 연속 출장의 대기록을 수립했던 위대한 선수였다. 1939년, 만 36세의 게릭은 훗날‘루 게릭 병’으로 알려지게 되는 희귀병인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을 진단받았고, 병마는 순식간에 그의 운동능력을 앗아갔다. 결국 게릭은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고, 은퇴식에서 그의 등 번호 4번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이것이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 결번이었다. 영구 결번의 명예를 논하는데 코비 브라이언트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프로농구, NBA의 전설인 그는 열흘 전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했다. 브라이언트는 1996년 프로 생활을 시작해 2016년 은퇴했지만 포지션을 떠나 최고의 NBA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기에, 미국뿐 아니라 농구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사람들은 오늘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의 NBA 득점은 3만3643점으로 카림 압둘 자바, 칼 말론, 르보론 제임스에 이어 역대 4위다. 참고로 5위는 마이클 조던이다. 그는 미국 국가 대표 선수로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며 사랑을 받은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이런 브라이언트를 위해 LA 레이커스는 2017년, 그가 선수시절에 사용한 8번과 24번 두 개의 등 번호를 동시에 영구 결번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LA 레이커스 한 팀에서만  20년을 뛴 그로서는 최고로 영예로운 선물을 받은 것이다. 스포츠에서 영구 결번이라 하면 해당 소속팀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친 경우다. 구단이 다른 선수들에게 해당 등 번호를 주지 않고 영구히 빈 번호로 보존해둠으로써, 그들의 공적을 기리는 풍습이라 보면 된다. 인종차별에 당당히 맞선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 로빈슨, 2130 경기 연속 출장의 대기록과 함께 살인 타선을 지켜 온 루 게릭, 미국 농구계의 기록을 갈아치운 브라이언트 등 이들 모두가 영구 결번의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모든 구단이 이처럼 많은 영구 결번 대상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영구 결번은 로베르토 알로마의 등 번호였던 12번이 유일하다. 이 곳 콜로라도 로키스 역시 지난 2014년, 17시즌 동안 팀을 위해 헌신했던 토드 헬튼의 17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것이 구단 최초의 사례였다. 시애틀 매리너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영구 결번 처리된 켄 그리피 주니어의 24번이 팀의 최초 영구 결번이었다. 이는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열심히 하다보면 각자의 분야에서 영구 결번과 같은 명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도 오지 않을까? 1972년, 한국의 현대중공업이 맨땅에서 배를 만들었을 때 세계 조선업계는 ‘용광로 없이 쇳물을 제조하는 격’이라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이제는 육지나 바다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배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조선 기술은 가히 명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국의 의학 기술 발전도 눈부시다. 간 이식 수술의 경우 삼성병원, 현대아산병원, 서울대학병원 등은 전세계적으로도 그 의술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서울대학병원의 경우에는 혈액형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도 간이식을 가능하게 했으며, 미국내 유명 대학병원에서도 할 수 없는 간 이식시 복강경 수술을 성공시켜 분야의 최고 경지에 올라있다. 또, 반도체, 컴퓨터, 텔레비전, 전화기 시장도 이미 세계를 장악한 지 오래다. 

       덴버 한인 커뮤니티에도 가능성은 있다. 오랜 불황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비즈니스를 꾸려나가는 경영인, 하루에 수 천개의 만두를 빚는 만두의 명인, 24시간 이상 푹 고아 뽀얀 국물을 만들어내는 설렁탕의 명인, 쫄깃쫄깃한 면발만을 고집하는 짜장면의 명인, 바삭하고 달콤한 후식을 만드는 제빵의 명인, 뭐든 10배로 부풀리는 재테크의 명인, 손바닥의 온도까지 측정하는 스시의 명인, 대학 안가고 20년간 게임만 개발해온 게임의 명인, 던졌다하면 월척인 낚시의 명인 등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있는 기술자들이 많다. 이러한 한인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들만의 비법을 모아 먼저 콜로라도 한인사회를 융성시키고, 나아가 미국 구석구석에 위대한 한국인의 모습을 심어준다면, 언젠가 한인사회도 미국 발전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되는, 그래서 어떤 소수 민족도 그 자리를 채울 수 없는 명예로운 이민자 사회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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