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원을 준다면 잘못을 저지르고 1년 정도는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안타깝게도 ‘괜찮다’라고 응답한 고등학생이 57%나 되었고, 20대도 53%로 절반이 넘었다. 이는 한국의 흥사단 투명사회 운동본부가 지난 3개월간 전국의 청소년과 성인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정직 지수’를 조사한 결과이다.  두번째 질문은 ‘나에게 도움이 되면 친구나 동료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항목이었다. 이에 대해 20대(65%), 30대(52%)의 과반수 이상이 그럴 수 있다라고 답했다. 세번째 질문은 ‘친구나 이웃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내가 잘 살면 된다’는 것이었는데, 이 항목의 결과는 10대 35%, 20대 59%, 30대 53%, 40대 46%, 50대 이상 33%가 그렇다는 응답을 보였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친구나 이웃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의식이 초등학생 이후에 강화되어,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에 이르기까지 심각해지고 있다.

     네번째, 청소년 대상 항목 중 ‘내 것을 빌려주기 싫어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질문에 초등 25%, 중등 43%, 고등 46%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우리 청소년들이 점차 입시 경쟁에 매몰돼 친구를 공동체 일원이 아닌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직장동료의 부정을 알고 모른척한다’는 조사에서도 20대 63%, 30대 60%, 40대 5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혹시 자신에게 피해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부정을 회피하거나 모른 척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직과 윤리 의식이 위기를 맞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의 정의와 정직을 바로 세우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정권이 바뀌어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는 대한민국의 내로남불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때 그는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를 거침없이 파헤쳤고, 현 세태를 과감히 비판하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던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그랬던 그도 엘리트 기득권이라는 특권을 이용해 반칙을 일삼아 왔다. 이처럼 지도층의 부정부패가 끊이질 않고, 빈부의 격차도 갈수록 심해지면서 젊은 세대들이 물질 즉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반영된 한 영화가 생각난다. 올해 북미 최대 한국영화 흥행작으로 선정된 ‘기생충’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사이의 구조적 부조리와 연민을, 봉준호 감독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풀어내 천만영화로 등극했다. 하지만  필자가 본 기생충은 빈부의 격차를 표현했다기 보다는 정직하지 못한 삶이 한 개인과 그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삶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석했다. 명문대학생이라고 속이고 부잣집에서 과외를 시작한 아들은, 여동생과 부모까지 그 집에 취직을 하게끔 꾸몄다. 그래서 네명의 가족 전원은 정직하지 못한 서류위조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속인다는 죄의식도 없이,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척 거짓 행동을 하면서 생활했다. 이때부터 이 영화는 빈부 격차가 아닌 정직과 거짓을 그린 영화로 이해하게 된다. 태생적으로 윤리의식이 약한 부모와 그 손에서 성장한 자식들은 남을 속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다. 진짜 실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희생과 인내심이 필요한데, 이들은 그렇게 뼈 빠지게 노력하느니 그냥 반 지하방에서 피자 박스나 조립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풍족한 삶에 대한 본능이 늘 존재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면 진짜 본 모습을 감추고 상대를 기만하여 사기를 치는 것도 능력이라 착각하는 부류이다.

     만약 네 식구가 성실한 직장생활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반 지하방을 탈출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족들은 정직하고 끈기있는 삶을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냥 철저히 속이며 거짓에 기생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다 자신들과 같은 기생 인간들을 만났다. 서로 타협하며 공생할 수도 있었지만, 주인을 속여야 하는 절박함에 의도치 않은 살인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집 남자를 죽인 아버지 송강호가 다시 그 집의 지하실로 숨어들어간 건 태생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삶이 그의 전부여서 그랬다. 자수라는 건 절대로 할 수 없는 거짓으로 포장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 다시 그 집을 사겠다는 아들의 삶의 목표도 결국은 아버지를 세상 밖에 내지 않고 숨기겠다는 비정직의 단면이다. 이 영화에는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까짓 거짓말쯤이야, 나만 잘 살 수 있다면 그까짓 속임수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사회의 정직이 무너진 것이 하루 이틀 된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정직 지수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나부터 정직하자’는 캠페인이 한창이다. 우리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도 나부터 정직하자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이다. 우선 단체장, 고령자, 부모 등 기성세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제 2019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한해 동안 각자의 정직 지수를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올 한해 돈 못 벌었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버틸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의지를 칭찬하고 다독여 주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 ‘정직한 한국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희망찬 2020년을 맞이하길 바란다. 동포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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