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되었다. 2020년도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은 모두 15명,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있다. 경남 김해에서 사는 송영준(18) 군이 그 주인공이다. 영준이는 전교 꼴찌에서 전국 최고가 된 올해의 수능 만점자이다. 송 군은 사교육 없이 학교 공부에만 충실해도 좋은 성적을 받는 게 '올바른 세상'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만점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라는 좌우명을 믿고 이를 악물고 고교 3년을 보낸 끝에 마침내 ‘수능 만점’이라는 신화를 일궈냈다.
이제 영준이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상징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수능만점자를 높이 띄워주는 것은 성적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등 비교육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하지만, 영준이 같은 청년을 널리 알리는 것이야말로 필자의 의무라는 생각이 앞선다.

      송 군의 아버지는 송 군이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식당에서 줄곧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키워진 아들이어서 그런지 대견스럽게도 일찍 철이 들었다. 영준이 어머니는“아들에게 가장 고마운 건 공부 잘하는 게 아니라 엄마 앞에서 늘 웃어준 것”이라고 했다. 영준이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김해외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처음 치른 반편성 배치고사에서 전교생 127명 중 126등을 했다. 꼴찌를 한 것이다. 1학년 때 치른 중간고사에서도 수학 성적이 86등에 그쳤다. 충격을 받은 영준 군은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을 청해 공고로 진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집안 사정도 어렵고, 공부에 소질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 빨리 취업해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흔들리는 영준이를 담임 선생님이 잡아줬다. “공부는 앞으로 잘하면 되고, 장학금을 알아봐 주겠다”며 송 군을 격려했다. 결국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삼성장학재단과 조현정재단 등에서 고교 3년간 장학금으로 1000만원을 받아 생활비에 보탰다. 송 군은 선생님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더 독하게 공부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매진한 영준이는 2학기 중간고사에선 전교 4등으로 점수가 확 뛰었다.

     송 군은 수능 만점 비결에 대해 잠자는 시간을 줄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담담하게 밝혔다. 김해외고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기상시각이 오전 6시 20분이고, 의무 자습시간이 밤 11시까지다. 송 군은 1시간 일찍 일어나고 1시간 늦게 잤다고 했다. 초등학교 4~6학년 때 동네 공부방에서 영어와 수학을 배운 것 말고는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2 겨울방학부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수강한 것이 전부였다. 이후 송 군은 2학년 첫 모의고사 때 전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고 줄곧 1~2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교육이니 스펙 쌓기 따위는 애초부터 그와는 관계없는 것들이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은데 송 군은 누구 하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성도 좋다. 수능 전날 학교 영양교사로부터 ‘언제나 성실하고 인사성 밝은 널 보며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동안 쌓아온 너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꽃길만 걷길 바란다’는 편지를 받았다. 평소 영준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지 않고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송 군은 세상을 바로 세우는 검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되어 고생하는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했다. “평생 열심히 살 겁니다. 남들보다 머리가 좋지도, 형편이 좋지도 않고, 가진 재능은 오직 노력뿐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부모 배경을 활용해 명문대와 의전원 입시에 유리한 경력을 만들고, 몇 번의 유급을 거듭했는데도 불구하고 장학금까지 챙긴 전 법무부 장관의 딸 뉴스는 청춘들의 좌절감을 증폭시켰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의 문제로, 결국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공정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물론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부모를 뒀다는 사실만으로 자녀의 성공과 그들의 윤택한 삶을 확정짓는 조건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위계층의 자녀가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경험하며 성장을 위한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스펙’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이 시대의 흙수저 젊은이들은 ‘타고난’ 불공정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했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울분을 터트린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창업시장에 뛰어들어도 대자본에 먹히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 시장은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사기도박판이 되었다.

     또, 수능이라는 전쟁을 끝낸 후 대학에 진학하고도 이상적인 직업을 찾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실업 상태에 놓여 있거나 비정규직으로서 사회에 발을 내딛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대학 이름과 성적, TOEIC 성적, 해외 어학 연수 경험, 자격증이라는 이른바 5대 스펙이 취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지만, 최근에는 기존의 5대 스펙에 더해 자원봉사 활동, 인턴십 경험, 수상 경력 등도 더해졌다. 타고난 불평등이 확대되며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는 더욱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영준이의 역전스토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노력의 기적’을 모처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절반 이상이 우리 사회는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불공정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송 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을 거듭해왔다. 문제집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어도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좌우명을 새기며 전 과목 만점을 받은 송 군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송 군은 많은 어른을 부끄럽게 했다. ‘노력해도 안 된다’며 자조하는 청년 세대가 만든 ‘노오력’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세태에서 "하면 된다"는 영준이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송 군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열심히 노력하면 용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