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승준씨가 한국에 입국할 가능성이 열렸다.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비자 발급이 거부된 지 17년 만이다. 서울고법 행정10부는 지난 15일 유씨가 LA 주재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비자발급 거부처분 취소소송 파기 환송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비자발급 거부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던 1심과 2심 결과를 뒤집고‘13년 전 입국금지 결정을 갖고 비자 발급을 거부한 건 위법’이라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유승준은 1997년 데뷔해 ‘가위’, ‘나나나’등의 곡을 발표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는 방송을 통해 수 차례 군입대 의사를 밝혔으며 국방부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그러다 입대를 목전에 둔 2001년 고별 공연을 한 뒤 군입대 전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다며 출국했다. 하지만 유승준은 곧바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병역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 대중들은 분노로 들끓었다. 바른 이미지를 통해 분야를 막론하고 톱 클래스급의 입지를 다지던 유승준의 결정은 당시 대중들에게 단순한 실망을 넘어,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2002년 2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유씨를 입국금지시켰다. 그리고 유씨는 병역 의무 이행 기간이 모두 끝난 2015년 LA 총영사관에 취업 활동이 가능한 F-4 비자 발급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울 행정법원에 비자발급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은 LA 총영사관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으면서 파기 환송심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내 여론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유승준의 상고심 재판 선고 기일을 앞두고 한 여론전문 회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백 명을 대상으로 유승준의 입국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이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유승준 입국금지 유지’에 대한 청원의 글이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으며, 20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병역 비리 혐의로 논란이 됐던 유명 연예인은 유승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송승헌, 장혁, 한재석은 병역 면제 판정을 받기 위해 브로커에게 수 천만 원의 돈을 줬다가 발각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이들은 잘못을 인정하며 송승헌과 장혁은 현역 입대를, 한재석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 부실 복무로 재입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수 싸이는 2003년부터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했지만 부실 복무를 한 정황이 드러나 현역으로 재입대를 해야 했다. 2010년 가수 MC몽은 고의 발치 및 공무원 시험 허위 응시로 병역기피 혐의를 받았다. 법정에서 고의 발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허위 입영 연기 사유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120시간 이상을 선고받아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이처럼 한국 국적 출신의 연예인들이라면 병역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남성은 헌법 제39조와 법률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 한창 공부하거나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나이에 18개월의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그만큼 예민한 상황이어서, 공정한 잣대가 중요시된다. 입시만큼이나 민감한 문제다. 계층 간 위화감을 촉발시켜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뿐만 아니라 국회 인사청문회 후보자들이 곤욕을 치르는 문제가 자녀의 병역특혜 문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병역의 이행 여부는 정서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통과 의례이다.

     그러나 최근 10년 간 유씨처럼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 면제를 받은 청년이 4만 명에 이른다. 이를 두고 복수 국적이 병역 기피를 위한 꼼수로 악용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이유는 아니다. 유씨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중 국적자들은 미국내 사관학교 진학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일반대학교를 졸업해서 연방 공무원직을 수행할 수 없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병역 때문에 한국 국적을 포기한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물론, 유승준의 경우는 국민적 공분을 살 정황이 충분했다. 그래서 유씨는 비자 발급 문제가 법적으로 일단락됐다고 하더라도 병역기피에 대한 도덕적 면죄부는 받을 수 없다.  10년 전 즈음, 한국의 입국금지 처분을 받은 이후 유씨는 덴버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비싼 콘서트 티켓을 구입해야하지만, 덴버에서는 복음을 위한 전도의 역할로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그때도 한국 정부와 풀지 못한 문제로 힘들어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무대 위에서 후회와 슬픔, 고뇌로 찬 그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도 10년이 흘렀지만 똑 부러지게 해결된 것도 없다. 여전히 그는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병역기피자들도 많은데, 유독 본인만 마녀사냥 당하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교부가 이번 판결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대법원에 재상고하겠다고 밝혀 실제로 유씨가 입국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또, 총영사관이 다른 이유로 비자 발급을 다시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이러한 모습은 정부가 혼심의 힘으로 유승준의 괘씸죄를 심판하기 위해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외 시민권을 취득해 군면제를 받은 경우도, 법적으로 군대를 갈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입국이 가능해진다. 군면제의 사유가 ‘해외 시민권’에서 ‘고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유승준이 인기 연예인이기 때문에 입국이 허용되면 병역기피 문화를 확산시킬 ‘공공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공공성에 대한 판단은 극히 주관적이다. 고령이 되고도 병역기피를 이유로 대한민국 입국이 금지된 사람은 유승준이 유일하다.

      한 여자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흉악 성폭범행 조두순도 고작 12년 만에 출소를 한다. 온갖 공작으로 대한민국장병들의 목숨을 빼앗고, 지금까지도 미사일을 싸대고 있는 북한 김정은의 입국도 공공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방한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유씨에 대한 국가적 처벌은 과하게 와 닿을 수 밖에 없다.  여론, 즉 유승준을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는 법적으로 입국 허가 여부와는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한국 정부의 유씨의 입국 거부 조치는 다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병역 문제에 있어서 국민적 정서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부의 조치는 냉정하고 엄격하게 법률의 근거에 따라야 한다. 설사 유씨가 고의적으로 병역을 회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도덕적 비난과 법 집행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17년이면 충분히 죄 값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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