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지난 3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한 탄핵조사와 관련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조사 압력을 행사하는 등 권력을 남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조사가 공식화되었다. 이날 하원은 찬성 232표, 반대 196표로 결의안을 처리했다. 민주당 의원 234명 중 트럼프 대통령이 강세인 지역구 2명을 빼고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이달 중순부터 우크라이나 스캔들 핵심 증인들의 청문회가 생중계되고, 존 볼턴 전 백악관 NSC 보좌관 등 거물급들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미국은 본격적인 탄핵 정국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청문회 공개와 여론전을 거쳐 연말에 탄핵 소추안을 하원 투표에 부친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내년 초에는 상원 심리로 곧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내년 11월 3일에 열리는 미국 대통령선거까지는 이제 꼭 1년이 남았다. 이런 중요한 대선 레이스의 출발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과 맞닥뜨렸다. 그에게는 불안한 출발이 아닐 수 없다.

     8쪽 분량의 결의안에는 탄핵 초안을 작성하고, 탄핵조사를 법사위원회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그 동안 비공개로 진행되던 청문회를 공개 청문회로 전환하는 방안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서 제기하고 있는 공정성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 백악관 측 트럼프 변호인들이 하원 법사위의 탄핵 관련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백악관 측이 의회의 증인 신청, 소환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내용도 있다. 다만 백악관이 하원의 문서 제출 및 증인 요청을 거부할 경우, 하원도 백악관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르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화 통화를 직접 들었던 인물은 알렌산더 빈드먼 중령이다. 그는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조사 결의안이 통과되기 이틀 전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이 미국의 안보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대통령의 전화 통화를 듣고 수십 년간의 경험과 훈련, 의무감, 지휘계통 내에서의 운용 의무에 따라 국가안보 관계자들에게 내부적으로 자신의 우려를 전달했다고도 말했다. 전화 통화를 들은 인물로 당시 현장에 있던 관계자가 증인으로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그는 탄핵심문에 협조하지 말라는 백악관의 명령에 불복하고 이날 증언에 참석한 것이라고도 밝혀, 하원의 대통령 탄핵조사에 대한 정당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이번 탄핵 절차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 트럼프의 권력 남용을 국민에게 알릴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마녀사냥”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관련 첫 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실제 탄핵될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투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공화당 의원들 중 찬성을 던진 ‘반란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에서 제포 밴 드류(뉴저지), 콜린 피터슨(미네소타)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전의 유사한 탄핵 절차 결의안 투표에서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는 민주당 하원의원 31명 이탈해 258대176으로 가결되었고, 1974년 리처드 닉슨 땐 공화당 전원이 투항하다시피 해 410대4로 통과됐었다. 이번처럼 의회 내 탄핵 여론이 철저히 당 대 당 대결 구도로 갈 경우, 민주당이 과반을 장악한 하원에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더라도,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선 탄핵 심판이 부결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상원에서 민주당 45명이 똘똘 뭉치고, 공화당 53명 중 최소 20명이 이탈해야 탄핵 가결 정족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족수는 100명 중 3분의 2인 67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탄핵의 명분과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민주당을 이끄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탄핵 추진의 전제로 ‘초당적 합의’를 꼽아왔다. 그리고 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트럼프가 외국 정부에 정적(조 바이든 전 부통령) 수사를 요구했다’는 비교적 단순한 서사 구조와 정상 간 통화 녹취록이라는 물증을 믿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최근 한 달여간 트럼프 혐의와 물증이 거의 다 파헤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지형에 아무런 균열을 가하지 못했다는 게 이번 투표에서 드러났다. 같은 팩트를 두고도 ‘탄핵할 만한 불법 행위인가’라는 판단에는 여러 기준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빼고는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부시 2세,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그만큼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현직 프리미엄이 강력한 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감한 감세, 규제 완화, 제조업 부활 등을 내세워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글로벌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독보적인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덕분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 지표가 현 수준의 양호한 상태를 유지할 경우 트럼프의 재선 전망은 밝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파격적인 언행과 편가르기 식 국정운영은 트럼프 피로감을 불러왔다. 그의 미국 제일주의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격하시켰다는 비판과 오래된 동맹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정치적 논란을 낳고 있다. 그의 수많은 돌발적 행동으로 인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 국민은 민주당을 하원 다수당으로 만들었고, 결국 오늘날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제46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이번 선거는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냐,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냐가 가장 큰 관심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으로선 일단 탄핵이라는 불을 끄는 것이 급선무다. 여론이 탄핵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고,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단속해 탄핵안을 상원에서 최종 부결시켜야 일단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동시에 재임 중 경제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지지층 규합에 올인해야 한다. 미 대선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정치, 경제, 안보 등을 좌우하는 지구촌 최대의 정치이벤트다. 미국을 최대 동맹으로 둔 한국으로서도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운명이 걸려 있는 중대사이기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사안이다. 하원에서는 트럼프의 탄핵열차에 이미 시동 걸었다. 속도 낼 일만 남았다. 향후 선거전에서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하원의 탄핵조사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될지, 민주당의 헛발질이 될지가 선거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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