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이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렸다. 그리고 북한과의 이번 경기는 또다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 명의 관중도 없이, 일 분의 경기 중계도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북한 축구의 성지’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는 정적만 흘렀다. 지금까지 북한은 안방경기를 치를 때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짝짝이 소리와 “본때를 보여라”는 함성과 더불어 거대한 파도타기 응원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텅 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심판의 휘슬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2년 전 한국 여자대표팀이 북한과의 축구 아시안컵 예선 당시와는 상황이 확연히 달랐다. 그때 김일성 경기장에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북과 장구를 든 응원단이 끊임없이 경기장에 몰려들었다.

     치열한 남북전의 힘겨루기는 득점 없는 무승부로 끝났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북한과 0-0으로 비겼다는 결과를 축구협회가 통보했다. 한국은 예선 성적 2승1무로 북한과 같지만 골득실(한국 +10, 북한 +3)에서 크게 앞서 조 선두를 지켰다. 북한과의 상대 전적은 7승 9무1패가 됐다. 그래도 북한은 김일성 경기장에서 14년 무패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생방송 중계가 없었던 이번 평양 남북전의 경기 상황은 현지에서 날아오는 문자 메세지 하나에 상상의 날개를 펴야 했다. 현지의 인터넷 상황도 좋지 않아 아시아축구연맹 경기감독관이 연맹 본부로 전달한 경기 상황을 대한축구협회가 전해 받아 남한 취재진에게 전달하는 황당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상 또한 협회가 편집해 올린 하이라이트가 전부다. 경기 전날 매니저 미팅 때만 해도 북한은 4만 명의 관중이 예상된다고 밝혔으나 경기 당일에는 홈 관중 입장까지 일방적으로 금지시켰다.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인 관광을 장려하고 있는 북한은 여행사들이 미리 예약을 받았던 외국인 관광객의 경기 관람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방 팀이 징계가 아닌 사유로 무관중 경기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관중 이유는 전해지지 않았다.

     북한의 무관중, 무중계의 결정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무관중을 선택한 첫번째 이유는 한국에 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2년 전 여자 축구는 북한(FIFA 랭킹 9위)이 한국(20위)보다 우위에 있다 보니 승리를 예상해 관중을 동원했다. 하지만 남자는 한국(37위)이 북한(113위)보다 전력이 월등히 높아 자국 관중에게 패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무관중을 결정했다는 의견이다.‘김일성 경기장’이 갖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열린 남북 축구 맞대결은 상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패배하는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남한에 대한 경계심이다. 김일성 경기장에서 우리 선수들과 월드컵 축구 예선전을 진행한다면 남조선 문화와 체육에 큰 관심을 보이는 평양 시민들이 경기장에 밀려 들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남한에 열광하는 평양시민을 미리 방어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관중이나 응원단을 경기장에 입장시키지 않았다면, 북한 당국이 얼마나 남한에 대한 동경심을 경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세 번째 해석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월드컵 예선이고 뭐고 생중계를 못 할 거라 이미 예상했었다. 다시말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남한에 외교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리하자면 이번 축구 원정경기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때처럼 스포츠 교류를 통해 평화 무드를 조성하려고 했지만 북한이 퇴짜를 놨다고 보면 된다. 사실 북한은 다른 분야는 몰라도 스포츠는 죽기살기로 뛰면 남한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히 축구경기에 지는 것이 두려워 무관중 무중계 조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김정은이 의도적으로 한국을 냉대하는 상황을 연출했고, 이는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대남 메시지임이  확실하다. 남한 대표 선수들의 고행은 북한 땅을 밟자마자 시작됐다. 선수들은 평양에 도착해 이것저것 수속받느라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3시간 가까이 걸렸다. 가방에 든 소지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손으로 써서 적어내야 했다. 고기와 해산물 등이 담긴 메인 요리 재료 상자 3박스를 특별히 준비해 가져갔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압수당했다. 결국 컴컴해진 밤이 되어서야 공항을 빠져 나왔다.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못했고, 숙소인 고려호텔 문에는 보안요원이 지켜 산책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은 북한 선수들의 격한 몸싸움과 욕설에 '이게 축구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선수들은 무관중이라는 황당한 소식과 더불어 경기 내내 욕설, 팔꿈치 공격, 백태클까지 당했다. 경기 이후에도 외출 없이 호텔 방만 지키다가 공항 버스에 몸을 실었다. 푸대접도 이런 푸대접이 없었다.
 
      우리는 이번에 무관중, 무중계, 무응원에 선수단 푸대접까지  '역대급'으로 희귀한 경기 과정을 지켜봤다. 한마디 반박도 못하고 북한의 처분만 기다린 현 정부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우리 선수단과 국민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이는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평창올림픽이 남북한 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다고 믿고 있고 있는 것을 보면,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현 정권이 먼저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이후 잠깐 화애 모드가 비쳤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상황은 북한의 자세에 따라 돌변했다. 이것이 남북이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스포츠는 평화를 위한 도구도, 정치를 위한 도구도 아니어야 한다. 열렬히 응원하는 관중들과 호흡하며, 공정한 규칙아래 그 결과를 냉엄히 받아들이며, 우정과 화합의 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양 경기는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문 대통령은 주한외교단이 모인 자리마다 남북 공동올림픽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무관중, 무중계 경기라는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도, 우리 선수들이 맞고 욕먹는 인간적 수모를 당하고도, 아직까지 남북 공동올림픽이나 공동월드컵 개최를 고집하는 것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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