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디모데후서를 참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디모데후서에는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 자신의 다음을 부탁할 수 있는 ‘그 사람’ 디모데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사도 바울 선생님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초대 교회의 위대한 세계 선교사’, ‘초대 기독교의 신학적인 기초를 만든 위대한 신학자’, ‘복음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초개와 같이 내 던졌던 위대한 순교자’라는, 한 마디로‘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주저 없이 갖다 붙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은 사람처럼 여겨지는 분입니다. 대게 이런 사람을 만나면 존경심은 가는데 ‘나하고는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며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를 읽다 보면 ‘사도 바울 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나와 같은 한 사람이구나’하고 참 많은 동질감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가 좋습니다. 다른 서신서에서는 볼 수 없는 자기감정 표현에 솔직한, 바울 선생님의 친근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참 반갑습니다. 디모데후서에는 네 장밖에 안 되는 짤막한 편지 안에 무려 26명의 사람들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의 입장에서 이 사람들의 이름을 갈무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울이 언급하는 고마운 사람들 중에는 ‘오네시보로’가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을 자주 격려해 주었습니다(1:16). 그리고 바울이 어디에 있든지 찾아가 만나 주는 사람이었습니다(1:17). 또 고마운 사람은 ‘누가’입니다. 누가는 지금 로마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 곁에서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울의 수행 비서였습니다. 눈이 좋지 않아서 편지를 쓰지 못하는 사도 바울 선생님의 대필자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4:11)고 말합니다. 또 고마운 사람들은 감옥에 있는 바울을 대신하여 감옥 밖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레스게와 디도’(4:10), ‘두기고’(4:12),‘브리스가와 아굴라’(4:19), ‘에라스도와 드로비모’(4:20)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둘째, 자신을 섭섭하게 한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울 선생님은 디모데후서에서 감옥에 갇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자들과 자신을 대적한 자들을 향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버렸는데 그 사람들 중에 ‘보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다고 말합니다(1:15).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간‘데마’에 대한 섭섭함을 언급합니다(4:10). 뿐만 아니라 바울을 대적하여 해를 입힌 사람들의 이름도 등장합니다. 악성 종양과도 같은 망령되고 헛된 말로 바울을 대적한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고(2:16,17),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있습니다(4:14).

      셋째,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도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선생님이 떠 올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고맙고 섭섭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관계를 다시 새롭게 회복하고 실은 사람도 등장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4:11). 마가가 누구입니까?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할 때의 그 ‘마가’입니다. 그는 한때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 팀의 일원이었던 사람입니다. 제1차 선교 여행 때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마가’가 선교 팀에서 이탈합니다. 이 일로 인해 제2차 선교 여행을 다시 떠나려고 할 때 사도 바울 선생님은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고 그와 결별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울 선생님은 조금 힘들다고 선교지에서 도망친 마가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자신의 선교 팀에서 내쳐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그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4:11). 다시 새롭게 회복된 관계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님은 마가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무익했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유익한 존재라는 것입니다(4:11). 모름지기 관계가 회복되려면 서로에 대한 존재와 관계의 의미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재해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어째서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들먹일까요? 지금 그는 외롭습니다. 쓸쓸합니다. 고독합니다. 이런 자신의 속내를 바울은 감추지 않습니다. 감옥이라는 환경이 자신을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납니다. 바울에게 등을 돌리고 스스로 떠난 이들도 있고, 사역을 위해 바울 자신이 떠나보낸 이들도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지독한 외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그리움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 ‘디모데’에게, 빨리 오라고 요청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4:9) 지금 로마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지금 감옥에서 겨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할 월동 준비를 위해 겉옷이 필요합니다(4:13).  바울은 지금 몸만 추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더 춥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를 만나고 싶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겨울 준비를 위해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빨리 오라고 말합니다(4:21). 바울은 지금 모두가 그립습니다. 지나온 인생살이 가운데, 고마웠던 ‘그 사람들’도 그리워지고,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섭섭하게 했던 ‘그 사람들’도 이제는 그리운 ‘그 사람들’이 되고, 내가 마음을 다치게 하고 섭섭하게 했던 마가 같은 ‘그 사람들’도, 바울이 그리워했던 것처럼 그리워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도 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관계 회복의 기적의 달콤함을 사도 바울 선생님처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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