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면 무조건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전쟁 이후 가난에 허덕이던 우리는 미군이 나눠줬던 달콤한 초콜릿에 반했고, 미국이 지원한 고소한 밀가루 빵에 감사했다. 훤칠한 키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폐허가 된 한국 거리를 활보하던 미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미국은 엄청난 부자 나라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미국을 막연히 동경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인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말이다. 출신 성분과 학연, 지연의 끈이 없어도 노력하면 출세할 수 있는 곳, 인간세상의 유토피아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태평양을 건넜다. 그 후 우리는 미국인을 닮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국에서는 허름하게 입은 사람이 가게에 들어오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거지꼴로 다니는 미국인들에게도 친절한 웃음과 인사를 건넸다. 아파트에서 된장 찌개 먹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면서, 발 냄새와 비슷한 치즈 냄새에는 애써 담담했다. 급기야 한국말을 잘하는 것보다 영어에 능통한 자녀가 되어주길 강요하면서 집에서조차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도 등장했다. 영어만 잘하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인을 닮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제는 우리의 것을 지키고, 알리는 것이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이민초기, 우리가 그토록 소원했던 아메리칸 드림의 사명은 잘먹고 잘사는 즉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랜 노력 끝에 먹고 살만해졌다. 일부는 부자 대열에도 합류했다. 타인종에 비해 고학력자가 많다 보니 교양과 부를 동시에 지닌 지적인 민족이라는 얘기도 들을 만하다. 이렇게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면, 이제는 눈을 돌려 한국을 미국에 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 중 가장 시급한 일이 2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2세들의 한국어 거부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몇 년 전만 해도 “Did you 밥 먹었어” “Did you 이빨 닦어?”하면서 짧게나마 한글 단어를 사용했던 필자의 둘째 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쩍, 조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만 사용해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비단 필자의 아들뿐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아이들은 대화 중에 반은 한국어, 나머지 반은 영어로 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차츰 영어를 더 많이 쓰게 되면서 결국은 한국어 사용에 불편함을 가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부모들은 결국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롭다. 같이 앉아있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면서 “밥먹었냐, 공부해라, 일찍자라”와 같은 아주 단순한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아이에게 영어로 말을 건네려니 발음이 창피하고, 조금 길게 말을 하려면 영문법부터 단어까지 이것저것 생각해야 하니 결국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처럼 미국인만 따라하다 가장 가까워야 하는 부모 자식간의 대화마저 단절된다면, 우리가 꿈꿔온 아메리칸 드림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로 세워진 이 나라에서 모국어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에 서 있는 것과도 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각자의 결정을 존중해야겠지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의 행동은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린 시절 한글을 익히고 배우는 것은 그만큼 부모의 역할이 크다는 얘기다. 모국어에 능통한 2세들이 많을수록 한인사회의 위상은 올라간다. 한국어를 자신 있게 말함으로써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성숙한 글로벌 시민으로 거주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73돌을 맞았다. 하지만 한국 내부에서도 무분별하게 퍼져 있는 외래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세계화의 흐름일까, 아니면 단순히 멋있어 보이기 위함일까. 한국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볼 때면 미국에서 제작되는 방송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 부모들의 지나친 학구열은 가나다보다 ABC를 먼저 배우게 하고, 한국말도 못하는 세살배기 아이에게 영어 만화영화만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다. 한 달에 2백만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은 일찌감치 등록이 마감된다. 공문서, 도로 표지판, 유적지 표석 등에도 틀린 글자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의 언어 파괴 현상은 심각하다. 신조어가 난무하고 이모티콘, 줄임말 등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문법상 잘못된 표현, 틀린 맞춤법이 예사로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욕설, 은어, 비속어 사용은 도를 넘어섰다. 하물며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도 뜻을 감지하기가 모호한 영어가 숱하게 등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글은 문화적, 과학적 가치를 지닌 우수한 문자다. 찬란했던 조선 문화의 상징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다. 창제자와 창제 이유를 아는 세계 유일한 문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한 한글이지만 정작 한국인의 한글 사랑은 그다지 깊지 않다.이제 영어만 잘하는 아이들이 잘나 보이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인들도 모국어를 하지 못하고 영어만 하는 2세들을 ‘바나나’라고 비아냥거린다. 외모는 동양인인데 속은 백인인 아이들의 모습을 비유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국의 것도 모르면서, 남의 것에만 열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빈정대고 있다.  한국말을 해야 한국식의 사고를 공유할 수 있다.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일은 부모와의 절대 공감을 형성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을 못 읽는 국민들을  '어엿비 너겨'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깊고 높은 뜻을 다시 한번 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에겐 ABC보다 가나다가 먼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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